전 세계 ‘디지털 실크로드’의 개척자로 ‘K콘텐츠’가 부상했다. 한국 영화 ‘기생충’ㆍ‘미나리’에 이어 드라마 ‘오징어 게임’, 방탄소년단(BTS)의 음악과 세계 1∼2위를 다투는 네이버와 카카오 웹툰까지 K콘텐츠의 진화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새로운 지표를 만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한국 대중문화의 진화는 SNS와 OTT, 스마트폰을 뛰어넘어 ‘한국문화→독창성→장르적 미학→공감’이라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가며 세계시장에서 소프트파워(정보과학ㆍ문화ㆍ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 강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가 열어준 K-콘텐츠 ‘디지털 실크로드’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이끌어낸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는 K콘텐츠를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시킨 기회가 됐다.
디지털 환경 구축은 소셜미디어(SNS)로 대표되는 ‘디지털 실크로드’와 넷플릭스로 상징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부상이 보여준다. 팬데믹은 OTT 성장을 가속화해 K콘텐츠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효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쓴 ‘기생충’에 이어 ‘미나리’에서는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는 기틀을 마련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을 연기한 배우 오영수가 2022년 1월 9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2개 부문 수상은 불발됐지만
영국 매체 BBC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대해 “TV 문화를 바꾸는 혁명의 조짐”이라고 까지 평가했다.
2022.2.27.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제28회 미국 배우조합 시상식에서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열연한 배우 이정재가 TV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정호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특히 67번 참가자 탈북녀 배역 정호연은 미국판 ‘보그’ 2월호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아시아인이 단독 표지 모델에 오른 건 1892년 창간 이후 130년 만에 처음이다.
앞서 ‘오징어게임’에서 참가번호 001번으로 출연한 오일남은 1월 9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TV 드라마 부문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한국인 배우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수상자로 선정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하늘길은 막혔지만 ‘K 무비’의 힘은 한국만의 한(恨)과 정서를 담은 콘텐츠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콘텐츠가 디지털 실크로드 개척의 닻을 올린 배경은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이 크다. 이른바 ‘디지털 대전환 시대'가 10년 정도 앞당겨졌다. 여기에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내러티브(Narrative)’ 전략과 한국만의 한(恨) 그리고 정서가 성장 동력이 됐다. 세계 최대 OTT 업체인 넷플릭스는 2021년 말 전 세계 가입자 수가 약 2억 1350만 명으로, 팬데믹이 본격 확산하기 전인 2020년 초 대비 약 48% 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방송된 K콘텐츠는 총 130여 편으로 이 중 오징어 게임 등 80여 편이 넷플릭스가 제작한 작품이었다. 넷플릭스는 2016년부터 약 1조 3000억 원의 자금을 K콘텐츠 제작에 투입했다. 올해만도 25편의 K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로 나간다.
K웹툰의 부상에도 스마트폰 보급 확산이 모바일 웹툰 콘텐츠 시장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네이버 웹툰은 2021년 100개국에서 웹툰 앱 수익 1위를 기록했고, 카카오가 일본에서 서비스하는 만화 앱 ‘픽코마’는 2021년 일본 전체 앱 마켓에서 비(非) 게임 부문 매출 1위에 올랐다. 세계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예고했고, 동시에 한국에서 제작한 영화와 드라마는 흥행 열풍을 이어가며 세계 시장 진출로를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함께 발표한 ‘2022 해외 한류 실태조사(2021년 기준)’에서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한국 콘텐츠 소비가 증가했다고 응답한 분야는 드라마(53.5%), 영화(51.8%), 예능(51.5%) 등의 순으로 영상 콘텐츠 분야에서 높게 나타났다. 조사는 18개국의 한국 문화콘텐츠 경험자 85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12월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류의 미래 가치를 파악하고자 전년도 조사에서 처음 도입한 지표인 ‘브랜드 경쟁력(파워) 지수(BPI)’는 61.6점으로 전년보다 3.1점 상승했다. BPI는 현재 인기도와 미래 잠재력 지수를 각각 50% 가중치를 적용해 100점으로 환산하는데, 분야별로는 한식(67.6점), 미용(뷰티, 65.3점), 영화(64.3점) 순으로 높았다.
‘디지털 실크로드’ 주도한 K-콘텐츠 성장동력
‘디지털 실크로드’ 개척과 맞물려 K-콘텐츠의 경제ㆍ문화 영향력도 커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2년 초 발표한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2020년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119억 2428만 달러(한화 14조 2000여 억 원)로, 2019년 102억 5388만 달러보다 16.3% 증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집계한 결과에서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한국의 전체 수출액은 5.4%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영화ㆍ음악 등 K콘텐츠의 수출액은 108억 3000만 달러(약 13조 1151억 원)로 6.3% 증가했다. ‘K콘텐츠’가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성장동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도 시작됐다. 특허청은 3월 4일부터 ‘K-콘텐츠 지식재산권(IP) 보호 지원’ 사업에 참여할 K-콘텐츠 기업을 모집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콘텐츠 산업에서 저작권뿐만 아니라, 상표(드라마 제목 등), 디자인(굿즈 디자인) 등도 중요해진 데 따른 저작권 시장을 견고히 하려는 조치다.
이 같은 K콘텐츠의 경제적 영향력은 향후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매력지수 향상에 이어 을 높이고, 문화ㆍ예술 분야 등 소프트파워를 강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높이고 있다.
K콘텐츠 확장성의 핵심은 무엇일까?
국내 콘텐츠 시장은 규모가 작아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팬데믹 이후 콘텐츠 소비 환경이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변하면서, 여기에 최적화된 K콘텐츠의 확장성이 대폭 커졌다. 경쟁력 있는 K콘텐츠들이 장르를 넘어 서로 융화되면서 가치를 확대하는 선순환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다만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을 고려한 추가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SNS, OTT, 스마트폰의 부상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환경의 디지털화가 K콘텐츠의 급부상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BTS는 화려한 퍼포먼스 외에도 음악에 내포된 세계관과 메시지가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BTS의 성공은 미국 내 하위문화적 현상으로 인식되던 K팝이 주류 음악으로서 재정의될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세계인이 공감하는 메시지를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내러티브 전략이 먹힌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개최한 ‘2022 글로벌 콘텐츠 콘퍼런스’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사회학)도 “K팝과 한국 드라마는 10년 후 굉장히 다르게 변할 것이다. 한국이 가진 고유성은 꼭 지켜야 한다. 세계에 보여주고자 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아직 세계가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BTS가 세계를 강타한 이후로 한류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듣게 됐고, 넷플릭스 등 영상 플랫폼 속 한국 드라마들을 보기 시작했다. 트랜스 미디어 선순환 생태계가 K콘텐츠의 성장동력을 뒷받침한다는 분석과 맥이 닿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흥행작 가운데 K웹툰을 원작으로 한 것들이 많다. ‘스위트홈’ ‘마이네임’ ‘지옥’ ‘킹덤’ ‘경이로운 소문’ ‘이태원 클라쓰’가 대표적이다. ‘웹툰 영상화→흥행→웹툰 재조명’의 선순환(善循環)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K웹툰 등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경쟁력 있는 스토리를 가진 K콘텐츠 풀(pool)이 커졌고, 선순환이 가능한 콘텐츠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 K콘텐츠의 성공 비결이다.
OTT를 통한 K드라마 흥행은 한국 노래 세계화에도 기여한다.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주제가(OST) ‘크리스마스트리’는 1월 5일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79위에 랭크됐다. 한국 드라마 OST 중 빌보드 메인 차트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K콘텐츠는 국내외 기업들과 인수합병 또는 제휴로 플랫폼을 확장하는 형식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2021년 하이브의 미국 연예기획사 이타카 홀딩스 인수, CJ ENM의 미국 스튜디오 엔데버콘텐트 인수, 네이버의 북미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 인수 등이 이를 보여준다.
영국의 경제 매거진 ‘모노클’은 2021년 1월호에 실린 ‘소프트파워 슈퍼스타들’이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독일에 이어 2위로 높게 평가했다. 2021년 9월에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K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치맥(chimaek)’ ‘대박(daebak)’ 등 26개의 한국어가 새로 들어갔다. 1976년 ‘김치(kimchi)’가 처음 등재된 이후 45년간 총 20개의 한국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됐는데, 한 해 동안 26개의 한국어가 추가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콘텐츠 시장이 미국 할리우드 일변도에서 다극화하는 추세인 데다, 1980년대 이후 세계에서 주목을 받은 일본 콘텐츠가 과거에 비해 시들해지고 있는 사례는 K콘텐츠 전성시대의 지속 가능성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징어 게임 등 넷플릭스 K콘텐츠 수익의 해외 유출 우려는 제일 아쉬운 부분이지만 제작비 조달 환경이 열악한 국내 제작사들 입장에선 이점이다. 글로벌 OTT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에 국내 제작사들의 협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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