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특수를 누리던 넷플릭스가 올 상반기 한국 월간 이용자 수가 올해 들어 100만명 넘게 빠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의 망 사용료 소송에서 패소했다.
대용량 비디오콘텐츠를 전송하는 OTT가 ISP에 트래픽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게 주 내용이다.
1심 재판부는 망 이용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SK브로드밴드가 인터넷망 접속·연결이라는 역무를 제공했으며
넷플릭스가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공자(CP)의 의무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일 뿐
콘텐츠 전송은 인터넷통신사업자(ISP)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해왔다.
SK브로드밴드는 망 중립성엔 망 이용이 무료란 개념은 없다고 반박한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2018년부터 3년간 넷플릭스로 인해 트래픽이 30배로 커졌고
인터넷망 용량을 3년 새 18배로 증설해야 했다”며 넷플릭스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1심 판결에도 망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이를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할 계획이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1심 판결에서 인정된 망 이용의 유상성을 부정하는 건 통신사업자의 기본 비즈니스 모델을 부정하는 것으로 일반 이용자와 국내 CP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지급하는 망 이용대가를 똑같이 지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망 이용대가는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망 중립성은 영세한 CP들을 보호하기 위한 개념인데
글로벌 IT 기업이 이를 악용해 적절한 대가 없이 막대한 투자가 들어간 통신망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망 중립성은 콘텐츠 생태계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로 연간 270억원가량을 요구할 계획이다.
KT와 LG유플러스에도 비슷한 수준을 내야 할 경우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로 내야 하는 금액은 단순계산 기준으로 연간 8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겪는 위기의 본질은 보다 근원적인 데에 있다.
구글에서 영어로 ‘Why Netflix’까지 입력하면 저절로 다음 문장(original is so bad?)이 등장한다.
소위 자동 완성이다. 2013년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시작으로
드라마 ‘나르코스’나 영화 ‘로마’ 등 한때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란 타이틀은 수작(秀作)의 동의어였다.
하지만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구글 검색창이 보여주듯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데이터업체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한국 이용자들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10위 안에 든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영국 드라마 ‘브리저튼’뿐이었다.
'브리저튼'은 180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브리저튼 자작 가문 8남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미국 소설가 줄리아 퀸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브리저튼 시즌2'는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촬영이 중단됐다.
앞서 제작진 한 명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여 24시간 동안 촬영을 멈춘 이후 두 번째다.
다만 넷플릭스는 코로나19에 감염된 해당 관계자가 출연진인지 제작진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데드라인의 설명이다.
영화 중엔 ‘승리호’, ‘낙원의 밤’이 각각 2·3위를 차지했지만,
둘 다 코로나 사태 여파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된 케이스다.
작년까지 빠르게 성장하던 넷플릭스 한국 월간 이용자 수도 올해 들어 100만명 넘게 빠졌다.
업계에선 원인이 “믿고 거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덕분”이란 풍자도 나온다.
킬러 IP가 없다
“디즈니엔 ‘어벤져스’, HBO엔 ‘왕좌의 게임’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엔?”
넷플릭스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성장한 IT기업이고, 콘텐츠 제작엔 뒤늦게 뛰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경쟁사인 디즈니나 HBO처럼 거대한 팬덤을 거느린 이른바 ‘킬러 IP(지식재산권)’가 없다.
OTT 후발주자인 디즈니플러스는 ‘어벤져스'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만들고,
HBO도 ‘왕좌의 게임' 외전을 제작하는 등 공세에 나서고 있다.
넷플릭스도 세계적으로 히트한 판타지물 ‘위처’, ‘섀도우 앤 본’이나 한국 웹툰 원작 ‘스위트홈’ 등
다양한 IP 확보에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 확고한 팬덤을 구축하진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창작권 보장의 역설
“넷플릭스는 정말 돈만 줍니다.”
10년 경력으로 올해 처음 넷플릭스 투자 영화에 참여한 영화 프로듀서 A씨는
“이렇게 간섭하지 않는 투자자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킹덤’의 김은희 작가도 여러 인터뷰에서 “넷플릭스 덕분에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창작자에게 전권을 주는 게 오히려 흥행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CJ E&M 관계자는 “제작자나 프로듀서가 작품 연출에 개입하는 건
관객의 눈높이와 상업성을 고려하는 것으로 영화 프로듀싱은 예술성과 상업성 가운데 균형을 찾는 역할인데
넷플릭스는 그런 기능이 없는 단점이 계속 노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극명히 보여준 사례가 ‘어벤져스'와 함께 마블의 양대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디펜더스’ 시리즈다.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등 인기 히어로들을 내세웠지만,
평단과 대중 모두 외면했다. 디즈니는 ‘디펜더스' 판권을 회수해 다시 제작할 예정이다.
한국에선 ‘보건교사 안은영’이 고교 선생 퇴마사라는 신선한 소재에
정유미라는 스타 캐스팅을 내세운 화제작이었지만, 난해한 연출 때문에 평이 엇갈렸다.
아이돌 스타를 대거 기용한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좋아하면 울리는’ 등도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방영이 시작되자 거의 화제조차 되지 않았다.
‘넷플릭스 올인’은 손해
넷플릭스 인기작의 특징 중 하나는 방송사와 동시 방영되는 콘텐츠가 인기있다는 점이다.
올해 ‘빈센조’나 작년 ‘사랑의 불시착’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되면 광고 수입이나 부가 판권 등을 통한 수입이 사라진다.
시청률이나 흥행 성적처럼 작품의 인기를 직관적으로 알기도 어렵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제작사 입장에서 넷플릭스는 해외 스트리밍 배급을 위한 파트너로 최적일 뿐,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란 건 반대로 보면 넷플릭스에 갈 때까지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넷플릭스가 라이벌 OTT와 경쟁 속에서
오리지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종편과 케이블 채널에 밀려 위기에 빠진 지상파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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