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만 파라’는 말은 요즘 급변하는 세상에 가장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깊이 대신 넓이를 얻었고, 전문성을 놓친 대신 유연성을 체득했으니까.
나다움에 갇혀 내 안에 쌓인 배움과 경험을 경시하지 말자. 나를 키운 건 변덕과 취향이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취향이 없나?”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후식으로는 블렌딩 원두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이 있고, 억만금이 통장에 쌓여 있어도 힘든 날엔 무조건 소주를 들이켜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공감하기 어렵다가도,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마음의 방향. 취향은 수없이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감탄사 한마디로도 수많은 이를 설득시키는 마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멋져 보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구를 동력 삼아 안목의 저변을 넓히다 보면 나다운 취향에 매달리는 것보다, 타인의 세련된 취향에 솔직한 치기와 이유를 덧붙이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촌스러운 것보다 거짓됨을 경계하고, 동경하고 열광하는 일에 진심을 아까워하지 않는 솔직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의도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쌓이는 것.”
호모 목록쿠스가 찾은 ‘좋아 죽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취향을 묻는 말 앞에서 자주 골똘해진다.
이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맞나?
나다운 취향이라고 설명할 수 있나?
대체 나다운 게 뭔데? 나다움에 갇혀 내 안에 쌓인 배움과 경험을 경시하지 말자.
‘나다운 취향’을 갖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일일이 따져가며 계산한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냥 시작한 ‘무작정’이었다.
취향이라는 말에 다소 따분해진 사람들은 어느샌가 ‘호불호’라는 말을 가져와 쓰기 시작했다.
좋음, 좋지 않음.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감정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취향에 진심을 쏟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운치 있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소몰이 창법 발라드가 싫어 TPO time·place·occasion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에 빠지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겉핥기식 말들 뿐인 에세이가 싫어 위로의 말을 고르고 솎아내는 법을 익히다 보면 호와 불호는 자연스레 경험치가 되어 내공으로 쌓였다. 잦은 변덕과 금세 싫증을 느끼는 성격 또한 좋은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하게 만드는 큰 동력이되기도 한다. 예전엔 싫었는데 지금은 마음에 드는 것, 더 좋아 보이는 것, 앞으로 더 좋아해 보고 싶은 것 등등. 색다르고 견고한 취향을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인 변덕스러운 호불호가 나의 경험치의 스퍅트럼을 넓혀주는 것이다.
원하면 감히 뛰어들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느낌이 오면 이제 그걸 왜 좋아하는지 본격적으로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좋아 죽을 것 같은 존재가 많아도 너무 많아, 목록까지 꾸리는 인간을 ‘호모 목록쿠스’ 신조어가 만들어진다.
인스타그램 책갈피 기능을 본격 활용해 ‘저장됨’을 무한 반복한 뒤, 뒤죽박죽 섞여 있는 애정들을 차곡차곡 서랍에 쌓는다. 공간, 아이템, 스타일, 노래, 음식 등 스크랩북처럼 모아둔 뒤 꺼내 보며 흐뭇해하는 과정을 통해, 넓혀 두었던 애정의 폭을 깊게 파고들어 간다.
열심히 쏘다니다 심장을 저격하는 존재들을 만나면, 김정현은 거침없이 달려들어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 일단 다짜고짜 좋아한다고 고백한 뒤, 푹 빠지게 된 이유를 호들갑스럽게 나열하고, 앞으로 건승하기를 바란다는 진심 어린 응원 멘트까지 덧붙인다.
부러워하면서도 인생에 지지 않는 비결!
타인의 취향과 시대의 트렌드를 탐구하다 보면 자신의 그릇은 더 넓어져야 한다.
멋진 중매쟁이, 좋은 주선자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질투와 시샘을 꼽는다.
잘난 콘텐츠, 부러운 아티스트를 치기 어린 마음에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좋은 중매에 방해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진작 깨달은 터다. ‘부러움’ 목록은 발품 팔아 관찰하고, 편식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질투와 시샘이 자기 성장에 얼마나 유용했는지 일깨운다.
“나다운 게 뭔데?”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나다운 취향이라뇨?
언제든 고집과 지조를 버리고, 환승과 변심으로 다양한 취향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넓고 다채로운 레퍼런스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나다움’이라는 말에 기죽지 않고, 돈 없어서 취향껏 못 산다고 쫄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다. 개성과 욕심, 질투와 동경,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는가? 취향에 관한 편견을 깨고 건강한 열정과 애정을 품는 방법을 배워보자.
우리는 내가 아닌 나를 욕망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혹은 그렇게 보이게 할 거라) 애써 종용한다. 욕망이란 말로 거창하게 포장했으나 그것들은 대체로 아주 작고, 원초적이고, 귀여운 욕심에 가깝다.
똑같은 장면이라도 다양하게 보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무심코 지나쳤을 디테일을 포착해, 그 사소한 차이를 만든 사람의 의도까지 떠올리며 감탄하고 감동하는 사람.
인생을 더 풍요롭게 사는 비결은 이 같은 시선의 차이 아닐까.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랑하려는 의지와 능력,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안목은 어떤 대상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쏟아본 사람에게 주어진다.
나다운 게 뭘까?
취향이란 그물망으로 건져낸 형형색색의 이야기들은 해상도를 높인다. 때로는 싫어하는 순간들로부터 취향을 발견하면서. 때로는 불호가 호로 바뀌어 과거의 나를 배신하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푹 빠져드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나다운 색깔이 쌓이는 게 아닐까 싶다. 나다움에 대해, 내 취향에 대해 고민이 꼭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또 어떤가… 취향의 세계에 빠져 유영하는 시간만큼 즐거웠다면 그 역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인용책:나다운 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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