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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나노사회 vs 배려사회

by 산골 피디 2022. 12. 26.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면면이 나노 단위로 분해되고 쪼개지고 있다.
시장의 단위부터 가족의 구성, 노동의 형태까지 모든 것들이 계속해서 나노화되고 있다.

2022년 1월, 평범한 학생들이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로 개봉과 동시에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1위를 기록한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이하 지우학)>의 홍보를 위해 제작된 포스터는 약 30여 종에 달한다. 영상 콘텐츠 한 편당 5~7종의 포스터를 제작하는 것이 보통인데, <지우학>은 5배나 많은 포스터를 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소비자의 선호가 세분화되는 '나노취향' 때문이다.
블록버스터를 선호하는 사람에겐 좀비와 주인공이 쫓고 쫓기는 포스터가,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주인공들이 손을 잡고 서로를 다독이는 포스터가 노출되어야 수많은 영상 콘텐츠들 사이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작고 미세한 단위로 쪼개진 것은 영화 포스터만이 아니었다.
2022년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면면이 나노 단위로 분해되고 쪼개진 한 해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정세는 자국에 이익이 되는 국가끼리 뭉치고 그렇지 않은 경우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사회 내부도 성별·나이·직업 등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장을 구성하는 단위도 계속해서 쪼개졌다. 소비자 취향이 세분화되고 개인 맞춤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이 기회를 얻었다.
 
 

사람들의 가치관도 나노화 

결혼 대신 비혼을 선택하고, 조직에 소속되기보다 혼자 일하는 노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이 모든 변화의 결과로써 구성원 사이의 공통분모는 계속해서 작아지며 사람들의 가치관은 점차 '나 중심'으로 변해갔다. 나노사회로 빠르게 전환되어 간 우리 사회의 방향을 점검해 보자.

●나노사회: 개인의 취향, 산업의 형태, 사회적 가치가 점차 극소 단위로 파편화되는 사회를 말한다. 산업화 이후 꾸준히 제기 돼온 문제이기는 하나, 그 경향성이 점점 더 강력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트렌드 변화를 추동하는 중요한 동인이 되고 있다. 공동체가 개인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개인은 더 미세한 존재로 분해되며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고립된 섬이 되어간다.-『트렌드 코리아 2022』, pp. 168~193 발췌



나노공동체: 분열된 집단

“지난 30년간 우리가 경험해 왔던 세계화는 끝났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Larry Fink 회장이 2022년 3월,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 담은 메시지다.
1990년대 이후 진행된 세계화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으로 우리는 '세계화 시대의 종언'을 목도하고 있다.

세계화의 종식은 곧 국가 간의 분열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이들의 대립은 곧 미국·유럽·일본·한국 등을 포함한 자유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북한으로 구성된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으로 이어져 '신냉전 시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와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로 초래된 에너지 전쟁 및 식량 위기도 가열되고 있다. 대만과 중국의 갈등, 미국과 중국 간 대립 등 그간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던 세계는 자원·외교·안보를 중심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국가 내부의 분열도 극에 달했다. 미국은 '낙태 제도'로 촉발된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면서 급기야는 내전을 염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이른바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문제는 이 판결에 대한 사람들의 찬반이 정치적 의견으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와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22년 8월 미국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3%가 “10년 내 내전 발생할 것”이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2022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저 수준의 지지율로 내몰리며 국론 분열의 중심에 서 있다.

국내 정치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022년 9월 열린 '2022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 KSP 성과 공유 콘퍼런스'에서 세계적인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 Daron Acemoglu MIT 교수가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정치적 분열 해소’를 꼽을 정도로 갈등이 심각하다. 여당과 야당 모두 내부 계파 갈등이 끊이지 않고, 주요 당직자들은 결집을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부분열을 조장한다고 해서 'X맨'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어느 해보다도 ‘분열’이란 단어가 한국 정치면에 빈번하게 등장한 2022년이었다.

정치권뿐만이 아니었다. 국민들마저도 서로의 생각에 동조하지 못하는 집단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성별·직업·나이 등으로 쪼개진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날을 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특정 집단의 매장 입장을 금지하는 '노○○존'이다. 아이들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 no kids존', 반려동물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펫 no pet존'에 이어 서울의 한 캠핑장에서는 중년층의 입장을 금하는 ‘노중년존’을 공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성별을 둘러싼 갈등도 극에 달했다. 2021년 12월, <헤럴드경제>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은 남녀 갈등(33.5%)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빈부 갈등(32.5%), 이념 갈등(12.8%) 보다 높은 결과로, 나이가 어릴수록 남녀 갈등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성별을 둘러싼 갈등은 언어에도 반영됐다. 예컨대 한 잡지사에서 2021년 12월, 한국 사회를 묘사하는 5대 신조어 중 하나로 선정한 '퐁퐁남', '설거지론'과 같은 단어는 사회에 만연한 남녀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좋은 직장을 다니는 순진한 남성이 결혼 전 연애경험이 많은 여성과 결혼하게 될 때, 해당 남성을 ‘퐁퐁남'이라고 지칭하고 이런 결혼을 '설거지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단어는 남녀 갈등을 넘어 기혼 남성과 미혼 남성의 갈등까지 조장한다. 설거지론을 주장하는 미혼 남성들은 “기혼 남성이 여성에게 호구 잡혀 산다”라고 조롱하고, 기혼 남성들은 “설거지론은 외모나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도태남들의 열등감 표현"이라며 서로를 공격한 것이다


나노시장: 작은 것들의 반란

시장에서도 나노타깃을 대상으로 하는 '나노시장' 현상이 두드러졌다.
나노시장은 두 가지 형태로 전개됐다.

첫째, 타깃이 나노 단위로 쪼개지는 '나노타기팅'이다.
1명의 소비자가 1개의 시장을 넘어 0.1개의 시장으로 규정되면서 개인과 맥락을 최적화하는 초개인화 기술도 함께 성장했다.

둘째, 타깃의 미세화에 따라 산업 형태도 소형화됐다.
개인 간 물건을 거래하는 플랫폼이 성장하고 (당근마켓, 중고나라), 소비자의 선호를 기반으로 신속하게 생산·판매하는 '나노유통'이 확산했다.

*초개인화 기술: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하여 궁극적으로 고객의 니즈를 예측해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모든 개인을 상황별로 구체화하고 더 자세히 접근하는 것이 특징으로 개인에게 얼마나 더 세심하게 맞출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트렌드 코리아 2020』, pp. 291~314 발췌

 


나노 타기팅: 개인화 알고리즘의 발달

소비자의 선호가 잘게 쪼개지는 나노취향 현상은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요즘은 아무리 재미있게 본 드라마나 영화라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추천하면 안 된다고 한다. 워낙 다양한 OTT플랫폼들이 상존하다 보니 상대방이 구독 중인 OTT 플랫폼에서 내가 추천한 영상을 서비스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개 이상의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 비중도 2019년 4%에서 2022년 기준 9% 로 늘었다. 덕분에 어떤 OTT에서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지 검색해 주는 ‘키노라이츠'와 같은 플랫폼이 2022년 인기를 끌었다.

키노라이트 화면 캡처=사진
키노라이트 화면 캡처

 

OTT 이용갯수별 비중변화=사진
OTT 이용갯수별 비중변화
2022년 상반기 2개이상 OTT 서비스 이용고객의 성별 연령별 비중=사진
2022년 상반기 2개이상 OTT 서비스 이용고객의 성별 연령별 비중


네이버 역시 2022년 6월부터 검색 결과에서 OTT 콘텐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 국민이 모두 함께 지상파 방송만을 시청하던 과거의 미디어 환경과 대비해 보면, 콘텐츠와 서비스가 얼마나 다양하고 미세하게 쪼개지고 있는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다수의 OTT 채널이 생기면서 내가 원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서비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검색 기술 역시 그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개인화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네이버는 검색 시스템에 인공지능 AI을 도입하며 검색하는 사람의 의도에 맞춘 '취향 검색'을 강화했다. 2021년 선보인 ‘스마트블록’은 AI가 검색하는 사람의 의도를 추측하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맹장염 초기증상', '창원 버스요금’처럼 하나의 정답을 찾고자 하는 경우와 '캠핑', '손세차'처럼 다양한 정보를 찾고자 하는 경우를 구분해 각기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검색하는 사람도 구분한다. 캠핑을 가보지 않은 사람과 캠핑을 자주 가는 사람이 '캠핑'을 검색했을 때 결과가 각각 다르게 표시되는 것이다.

2022년에는 스마트블록 기능을 한층 강화한 '로컬 스마트블록' 기능도 새롭게 선보였다. 로컬 스마트블록은 사용자가 특정 장소를 검색한 경우, 그 주변에 위치한 가볼 만한 맛집·명소·카페 등을 함께 제안해 주는 기능이다. 해당 장소 방문 전후로 찾은 장소들도 함께 제공된다. 길 찾기 데이터처럼 실제 소비자가 활용한 데이터에 기반한 만큼 정확도도 높다.

전통매체인 TV 플랫폼에서도 타깃 기반 광고가 등장했다.  원래 TV에서는 같은 시간, 같은 채널을 보고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똑같은 광고를 송출한다. 반면 2022년 새롭게 등장한 '어드레서블 addressable TV'는 마치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이 개인별로 다른 광고를 노출하듯, 사람들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동일한 채널을 보더라도 골프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는 골프 제품 광고가,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금융 상품 광고가 방영되는 형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IPTV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 덕분이다.
LG U+, SKB, KT 등 IPTV 회사가 셋톱박스를 통해 소비자가 어떤 채널을 즐겨 보는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KBS N, SBS미디어넷, MBC와 같은 채널에 개인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편 사용자에게 최적화한 개인화 알고리즘 기술이 부상하자, 이에 반발하는 소비자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기술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알고리즘 추천을 역으로 활용해 개인화 기술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시청하고 나서 수시로 검색 기록과 시청 기록을 삭제한다. 로그아웃 상태로만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아예 학습용·게임용·음악용 등으로 계정을 분리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피하고자 하는 단어를 “○○ 싫다”라는 검색 키워드로 입력해서 알고리즘을 학습시키기도 한다.


나노유통:수요 중심으로 유통시장 재편

유통시장 역시 더 작은 단위로 쪼개졌다. 소비자의 취향이 미세화되는 만큼, 이를 빠르게 포착해 대응하는 '작은 유통'이 경쟁력을 갖는다. 개인 혹은 기업이 소비자의 '좋아요 like’를 기반으로 수요를 확보한 후, 신속하게 생산·판매하는 수요 중심 유통이 '라이크커머스' 다.


*라이크커머스: 크리에이터가 팔로워의 '좋아요'를 기반으로 수요를 확보한 후, 제조 전문 업체에 제조를 위탁하고 물류 전문 업체를 이용해 유통을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이렇듯 '좋아요'에서 출발하는 소비자 주도 유통 과정을 '라이크커머스'라고 명명했다. 초기 인플루언서들이 기성제품의 '판매'에만 집중하던 '세포마켓' 트렌드가 진화한, 세포마켓 2.0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2』, pp. 378~403 발췌

먼저, 일반 개인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다른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C2C: Consumer to Consumer 모델이 빠르게 성장했다. 개인 브랜드 론칭도 쉬워졌다.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뷰티 시장이다.
예컨대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를 통하면 토너·에멀션·크림의 경우 약 100개 정도로 소량생산이 가능하다. ODM 업체에 생산을 위탁하고 본인은 판매만 담당하는 '화장품책임판매업자' 역시 2022년 약 5,333건이 추가로 등록됐는데, 전년 동기간 신규 등록한 2,632건과 비교해 약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누구나 쉽게 화장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체 플랫폼 ‘코스맥스 플러스'와 '플래닛 147'을 각각 선보이기도 했다.

생산에 대한 부담이 적은 일부 업종에서는 POD Print On Demand(주문 제작인쇄)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POD란 창의적인 디자인 도안만 있으면 상품 판매를 위한 복잡한 머천다이징 절차 없이 온라인에서 상품을 만들어 판매가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마플샵'은 나만의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손쉽게 론칭할 수 있도록 상품 제작·판매·배송 등을 대신해 주는 POD 커머스다. 오리지널 굿즈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이미 자신만의 콘텐츠와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굿즈를 갖고 싶어 하는 팬들이 크리에이터에게 마플샵을 소개하며 굿즈 제작을 요청하기도 한다.
제조사가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Direct to Consumer 모델도 한층 성장했다.
면도기와 리필용 면도날을 판매하는 생활용품 스타트업 ‘와이즐리’는 D2C 모델을 활용해 면도기를 일반 가격의 5분의 1 수준에 공급해, 2021년 기준 한국 면도기 시장에서 약 9.3% 점유율을 차지했다. 오프라인 체험관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매트리스를 판매하는 스타트업 '삼분의 일'은 유통·배송 거품을 뺀 ‘반값 매트리스’로 창업 1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대기업의 경우에도 D2C가 시장 확대를 위한 돌파구가 되고 있다. 주로 대리점을 통해 침대를 판매했던 시몬스는 2022년 4월, “D2C 리테일 체제로 전환한 후, 2년 만에 총매출이 1,016억 원 증가했다”라고 발표했다.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도 나노시대의 새로운 유통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의 니즈를 모아 신속하게 생산해 내는 C2M: Customer to Manufacturer 모델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온디맨드' 비즈니스는 생산자와 제조사를 연결하는 C2M 모델의 대표적인 사례다. 온디맨드란 공장에서 제품을 미리 만들어놓지 않고, 소비자의 주문이 들어오면 즉각 제품을 만드는 생산 방식을 뜻한다.
판매하기 최소 1년 전 해외 공장에 대량생산 주문을 넣어야 하는 패션 시장에 이런 온디맨드 생산 방식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레베카 밍코프 Rebecca Minkoff는 온디맨드 제조 업체인 레저넌스 컴퍼니 Resonance Company와 협력해 일부 라인을 온디맨드 방식으로 생산한다. 소비자가 옷을 주문하면, 도미니카 공화국에 위치한 '레지던스 공장'에 클라우드로 디자인이 전송된다. 공장에서는 원단을 디지털 방식으로 인쇄한 뒤 로봇을 이용해 패턴에 맞게 자른다. 재단된 원단은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미국 내 공장으로 보내져 바느질해 옷으로 완성된다. 소비자가 주문한 옷을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1~2주에 불과해 생산혁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노자아: 혼자를 지향하는 개인주의 가치관

가치관 측면에서도 집단에 동조하기보다는 개인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언론사 <뉴시안>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와 함께 2022년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MZ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개인주의(61.8%)'가 선정됐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한다(48.3%)',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회피한다(31.3%)'는 응답도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당신을 존중할 테니 나도 존중해 달라”는 뜻으로, 타인의 평가와 영향력에서 벗어나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다. 나노사회와 나노시장으로부터 촉발된 개인화 경향이 개인주의 가치관으로까지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나노가족의 등장과 고독사회

'우리'를 중시하는 가족에서조차 개인주의 가치관이 강화된다. 혼자 사는 가구가 증가하고, 가구원 수는 점차 감소하며, 함께 산다고 해도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지 않는 '나노가족'이 한국 가족의 보편적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노가족의 대표적 형태인 '1인 가구' 숫자는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은 33.4%였는데, 이 비중은 점차 높아져 2050년이면 39.6%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 역시 2010년 2.7명에서 2020년 2.37명으로 줄어들었고 2040년에는 1.97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 형태가 나노 단위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4인 가족이 보편적 가족 구성이었던 한국에서도 1인 가구를 비롯해 딩크족, 재혼, 입양가정, 친구나 연인 등이 함께 사는 등 새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그 비중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나노가족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 서 쉽게 논의되지 못했던 가족 형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혼·사별로 인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재혼으로 새롭게 구성된 가족 등이 있다. 이런 변화는 대중문화에도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젊은 부부가 결혼과 이혼을 선택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다루어 화제가 된 티빙의 <결혼과 이혼 사이>, 5~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즌4를 준비 중인 MBN의 <돌싱글즈> 등의 프로그램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희생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나만의 삶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가치관 변화를 잘 보여준다.

비혼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도 있다.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쓴 백지선 작가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꼭 혈연이 아니어도 서로 지지하는 진정한 가족을 만들 수 있으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본인이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족 단위의 미세화, 가족 구조의 다양화와 함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기도 했다.
사회적 고립도는 인적·경제적·정신적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데, 2022년 1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적 고립도는 34.1%로 2년 전 조사보다 6.4% p 증가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은 고립 상태에 놓여있는 셈이다. 몸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27.2%를,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는 응답도 20.4%를 기록하며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9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가족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개인의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외로움에 근간한 '고독사회'의 등장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나노노동:혼자 일하는 N잡러 노동

조직에 소속되기보다는 혼자 일하는 '나노노동’도 2022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2년 7월 기준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전년보다 4만 9,000명 증가한 433만 9,000명을 기록했다. 전체 비중으로 보면 약 76.2%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비중은 같은 기간 29.1%에서 23.8%로 줄었다. 배달대행업체 등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고용 없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는 점으로 볼 때, 이 같은 변화는 배달 앱 같은 플랫폼 노동자 증가, 키오스크와 서빙로봇을 활용한 무인 매장 증가로 인한 결과로 해석된다.
일의 형태도 '나노노동'으로 쪼개지고 있다. 정규직 직업을 갖고도 틈새 시간을 쪼개 추가 수익을 올리는 아르바이트가 나노노동에 해당된다. 취업포털 알바천국이 2022년 1월, 경력 5년 미만 직장인 1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8명(78.5%)은 취업 후에도 아르바이트 병행을 고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나이대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시장의 주축인 20대의 지원 건수는 감소한 반면, 40대와 50대는 각각 27.7%, 64.4% 증가했는데, 이는 30~50대 직장인이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들면서 나타난 변화로 해석된다.


배려사회를 향하여

사회는 각자의 이익을 좇아 더 잘게 쪼개지고, 사람들의 취향은 점점 더 세밀해지며, 집단주의적 가치관보다 개인주의 가치관을 우선하는 나노사회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 같은 변화 앞에서 갈등과 분쟁을 줄이며 서로를 인정하는 '성숙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나노집단'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배척하고 차별하기보다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치관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는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여름, OTT 서비스 웨이브에서는 국내 최초로 성 소수자 관찰 예능 프로그램 2편이 연달아 공개되어 화제가 됐다. 성 소수자 커플 4쌍의 일상과 사회적 편견을 다룬 <메리퀴어>와 게이들의 연애 리얼리티쇼 <남의 연애>다. 일부 온라인 카페에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찬반양론이 뜨겁게 펼쳐지기도 했지만, 이러한 파격적인 주제가 화두로 던져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노력도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일본의 펫 pet 친화 공동주택 엘리베이터에는 반려동물 탑승 여부를 표시할 수 있는 '펫버튼'이 설치되어 있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배려해 엘리베이터에 반려동물이 탑승한 경우 펫버튼을 눌러 대기 중인 사람들에게 탑승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의 취향을 강요하기보다 나의 취향을 싫어하는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서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혼자가 더 편한 나노사회에서 반드시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기업들의 고민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향후 기업은 나노사회 구성원이 서로를 배려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 글로벌 IT 기업 ‘시스코'는 친절함을 베푼 직원을 시상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안내데스크 직원에서부터 시니어급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친절직원으로 뽑힐 수 있으며, 선정된 직원에게는 약 100~1만 달러의 보상이 제공된다.
시스코의 이직률은 산업 평균의 절반 수준인데, 전문가들은 기업이 직원에게 “당신의 친절·도움·협력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직원의 조직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노리나 허츠 Noreena Hertz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UCL 특임교수는 최근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의 경제 loneliness economy' 개념을 소개한 바 있다. 외로움의 경제는 사람들에게 타인 및 공동체와의 연결을 제공하는 서비스·제품을 기반으로 한 경제를 뜻한다. '외로움'이 곧 시장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오는 동력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의 슬픈 단면을 보여준다. 외로움 경제의 출현은 나노사회가 낳은 필수불가결한 현상이겠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이를 발판 삼아 서로를 포용하는 배려사회로 진일보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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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트렌드 코리아 2023 (김난도 외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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