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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변화의 시대에 변하지 않는 학교

by 산골 피디 2021. 12. 28.

변화의 시대, 바뀌지 않는 학교의 역설

우리의 학교는 삶에 기여하는 리터러시를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교 안에 배움을 촉진하는 제3의 문화적 학습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의 모든 공간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우리의 학교도 발전해 왔습니다.

좋은 건물이 지어졌고, 괜찮은 학습 기자재들도 준비되었으며, 학급당 학생 수도 줄어들었고,

선생님들의 역량도 좋아졌습니다. 학생들의 가정 형편도 대개는 예전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초중등학교가 의무교육이 되었고, 너나 할 것 없이 가계 지출의 1번 항목은 자녀들의 선행학습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1세기 한국 학교는 역설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진화했지만, 학교의 공간적 개념은 점점 퇴행하고 있습니다.

 

 

뒤로 가서 퇴행이 아니라, 앞으로 가는 모든 것들과 달리 제자리에 멈추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괴리가 생깁니다. 학교와 학교 바깥의 것들 사이의 틈이 점점 벌어집니다.

이격 된 공간에서는 제3 공간이 생겨날 틈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진화하고 풍족해진 21세기에도 우리의 학교는 여전히 공간 부족에 허덕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학교와 생활세계를 연결하는 제3의 개념 공간이자 문화 공간입니다.

습득과 학습이 통합되는 실제적인 배움의 공간입니다. 학생 수가 줄고 학교 건물이 늘어나도 점점 줄어드는 제3 공간의 실정은 현재 우리의 학교가 직면한 공간적 역설입니다.

 

세 가지 측면에서 이러한 공간적 역설의 학교 상황을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1. 사회의 요구와 멀어진 학교

 

먼저 가치 공간의 역설'입니다.

20세기 후반까지 한국 학교에서 실행되는 교육과정, 수업, 학습, 평가와 같은 교육 행위들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일관성과 긴밀성이 있었습니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학교 밖의 산업화 사회가 요구하는 효율성과 생산성'의 가치를 중요한 덕목으로 삼아 설계되었습니다.

 

이런 교육과정에 부합하기 위해서 기초 기능의 훈련과 단편 지식의 암기에 몰입하는 직접 교수법 direct instruction'이 성행했습니다. 역량을 세부적으로 잘게 쪼개어 집중 반복 훈련하는 수업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훈련된 기능들을 선발 경쟁의 맥락에서 결과 중심적으로 평가했습니다.

 

20세기의 배움이란 그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근본적 앎에 관한 탐구가 생략된 채

잘게 썰린 기능의 절편들을 잘 씹어 삼키는 것에 국한되올 습니다.

삶의 가치라는 앞과 학교의 실행이라는 뒤의 가치가 어울리는, 앞뒤가 딱 맞는 교육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까지 우리나라의 학교는 행복한 공간이었습니다.

모두가 학교에 가고 싶어 했고, 좋은 학교를 나오길 원했고,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학교는 생활의 가치를 반영하고 강화하는 값어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학교가 삶의 가치, 정확하게 말하자면 산업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사회가 주목하는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사뭇 진지하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그 대답이 이전의 것들과는 사뭇 달라야만 한다는 점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세기가 원하는 인간상이 바뀌었고, 사회가 원하는 인간의 역량이 재정의되었으며,

인간의 배움에 대한 사회의 관점들이 조금씩 진화하였습니다.

산업의 구조도 바뀌고, 산업 환경이 요구하는 노동자의 능력과 조건도 바뀌었습니다.

 

산업구조와 사회의 질적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효율성과 생산성보다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역량과 태도가 중요해졌고,(*효율성:하던걸 더 잘 하자 / *혁신성:새롭게 잘하자)

그런 것들을 보유하고 발휘할 수 있는 인적 자원들이 필요해졌습니다.

 

 

 

2.표준화의 늪에 빠진 학교

 

20세기 후반까지 한국 학교는 표준화된 능력을 가르쳤습니다.

표준화된 능력이란 특별한 맥락이나 환경에서 오는 차이에 결부되지 않는 능력입니다.

이는 최고의 수준에서는 전문성이라 말할 수 있으나,

대개의 경우 시간만 적당히 투자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기능적 수준에 묶여 있는 유사 전문성입니다.

가령, 읽기와 쓰기는 대량생산적으로 의미를 만들어 내고 소통하는 기능적 리터러시 functional tterecy를 중심으로 배우도록 기획되었습니다.

 

표준화된 글쓰기 능력과 읽기 능력, 딱 그 정도의 표준화된 인지 기능만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술은 배우지만 반대로 관점과 문화는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목표로 삼은 표준화된 인지적 기능들은 20세기 후반까지의 생활세계와 산업 체계에 꽤 잘 어울리는 것들이었습니다. 학교는 삶의 수단이니까, 학교가 삶에 어울리는 그런 기능들을 주로 가르친 것입니다.

 

학교는 마치 기능 공장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학교들은 규격에 맞는 기능적 인간을 길러 내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학습 공간이었습니다.

몰개성의 대량 제조 시스템이 원하는 표준적 인간을 키워내는 20세기 학교는 그만큼 몰 인간적인 사회적 요구 측면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바람직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생활세계의 다양성이 엄청나게 증대됩니다.

사회 변화의 한 축, 아니 중심축을 디지털, 사이버, 테크놀로지와 같은 것들이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양성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연령과 재능, 목적, 관심사,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소통합니다. 다양한 소통 채널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누구나 의미 소통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세상의 이목을 끌 수도 있습니다. 표준화된 능력도 필요하지만 개성 넘치고 개별화된 방식의 읽고 쓰고 생각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요구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21세기 우리의 학교는 표준화된 능력에 집착합니다.

다양한 텍스트를 다루는 역량이 아니라 몇 가지 정해진 텍스트에만 국한된 표준화된 기술을 집요하게 가르칩니다.

이런 읽기와 쓰기는 표준화된 시험에 가장 최적화된 리터러시입니다. 표준화된 기술을 가르치는 일은 학생들을 가장 값싸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저렴한 한 가지 솔루션그 로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려는 구두쇠 교육입니다.

적게 투자하고 많이 얻으려는 교육이자 좁게 생각하는 교육자들이 크게 생각하라고 학생들에게 외치는 모순의 교육입니다. 꺼내 놓은 말들이 예외 없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양치기 교육입니다.

 

"One size fits all(하나의 사이즈가 모든 이에게 맞는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객의 체형을 무시하고 하나의 사이즈로 옷을 팔려는 가게가 손님을 끌어모을 리 없습니다.

다양한 사이즈와 디자인,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옷들을 즐비하게 걸어도 될까 말까 한 생존 환경입니다.

한 가지 사이즈로 읽는법, 쓰는 법, 생각하는 법에 집착하는 교육은 다양한 생각과 관점, 경험과 배경, 기호와 선호를 가진 학생들 어느 누구에게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사이즈는 다 버리는 사이즈가 됩니다.

이것이 급변하는 다양성 세계와 여전히 획일적인 학교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이유입니다.

 

 

3. 다양한 정체성에 둔감한 학교

 

20세기에는 학교와 생활 정체성의 공간이 대동소이했습니다.

그때는 오파 라인 공간도 아니고 온라인 공간도 아닌, 그냥 어떤 공간의 정체성이라는 것만 있었습니다.

사실 오프라인이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온라인이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로 구축되는 가상의 공간이 없으니,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만 관찰 가능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학교 역시도 하나의 unitary 학습자 정체성만 신경 쓰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종류의 정체성에만 신경 쓴다는 것은 그것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고려해야 할 것들이 없기 때문에 서로 충돌할 일이 없고, 그로 인해 해결해야 할 골치 아픈 문제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학교 교육자들은 학생들의 삶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학교 당국이나 교사들이 학생들과 다르지 않은 현실 공간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경험하는 배움의 방법과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었고,

교육적 의사 결정 과정이 복잡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지털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테크놀로지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디지털 맥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도 분화되었습니다. 인터넷이 갖추어진 지금, 많은 현대인들은 현실 세계 정체성뿐만 아니라 가상 세계 정체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이 둘이 충돌하고 경합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조정되기도 합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것은 디지털 원주민과 이주민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정체 성의 현존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협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우리 학교는 여전히 현실 세계 정체성밖에 살피지 못합니다.

학교라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관찰되는 아이들의 정체성은 대부분 현실 정체성입니다.

그들이 온라인 공간, 사이버 공간, 디지털 공간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하는지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에게 학교가 재미없는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말들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학교에서 다루는 교과의 내용과 방법이 그들의 정체성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적 가치와 의미가 사람의 생각과 일에 영향을 미치는 '전부'인 것처럼 기술함으로써 오히려 온·오프라인의 연결된 삶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터러시를 배우는 새로운 학교

21세기 학교는 가치, 역량, 정체성의 측면에서 퇴화된 공간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의 많은 것들이 좋아지고 발전했지만, '학교와 삶의 공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교육 당국이 충분히 노력했다는 증거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학교는 우리 아이가 8살부터 19살까지 자라나는 동안 특정한 지식이나 기능, 즉 서로 다른 지식이나 기능 간의 연계성과 융합의 여지가 고려되지 않은 수직적 발달 과정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아이들은 수평적으로도 성장합니다. 다양한 생활세계에서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경험의 공간들을 돌아다니면서 배움의 과정에 몰입하고 확장적으로 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공간들을 서로 비교하고, 그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정의하면서

 

'이 공간은 왜 다른 공간과 다를까?'

어떻게 하면 각 공간에서 얻은 경험들이 연결될 수 있을까?'

'나는 다양한 공간 안에서 어떻게 나의 배움을 계획하고, 점검하고, 조정해야 할까?' 등의 문제들을 풀어 나갑니다.

 

지금의 학교는 공간적, 수평적 성장을 포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삶의 리터러시를 불필요하거나 열등한 것, 또는 학교 학습의 방해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결된 공간, 제3의 방식으로 융화된 공간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리터러시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읽고 쓰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다양한 맥락에 어울리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 공간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양한 리터러시와 배움의 맥락에 대한 메타인지를 성장시키는 일이며,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앎을 가능하게 합니다. 학교에 제3 공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경쟁의 사회에서 학교는 종종 삶의 목적으로 둔갑합니다.

목적이 된 학교에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건 간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일이 지상 과제입니다.

하지만 학교는 좋은 삶을 준비시키는 수단일 뿐, 좋은 학교로 진학하는 일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학교는 한 개인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기술과 역량, 지식과 세계관의 학습을 돕는 좋은 도구와 기회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학교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회인, 직업인, 시민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성장하려면, 제3의 배움 공간이 필요합니다.

 

*인용서적: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조병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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