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352820)가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은 충격을 불러왔다. 에스엠의 창업주인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자신의 지분을 경쟁자 하이브에 넘겼기 때문이다. 또 방탄소년단(BTS)과 NCT, 뉴진스, 르세라핌, 에스파,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이 한 식구가 될 것이라는 소식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하이브의 에스엠 인수가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카카오(035720)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에스엠에 2171억 원을 투자해 지분 9.05%를 확보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설 예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가 불편한 동거를 할 수 없기에 둘 중 하나는 손을 들고나갈 것으로 예측되는데 과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카카오, SM인수 가능할까?
하이브가 에스엠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입장에서는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업계에서 카카오의 에스엠 투자에 대해 대형 지식재산(IP) 확보와 함께 카카오엔터 우회 상장이라는 일석이조를 노린 전략이었다고 관측했던 만큼 일격을 당한 카카오 입장에서는 초조한 상황이다. 수세에 몰린 카카오가 자금력을 동원해 정면 승부를 택할지, 아니면 에스엠 인수 의지를 접고 새 판 짜기에 나설지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카카오 입장에서는 IP 확보·카카오엔터 우회상장 등 에스엠 지분 늘리면 시너지 크지만 공개매수 '맞불'땐 가격부담 커져 하이브보다 비싼 값에 주식 사들여야 한다. 게다가 이수만 측 '가처분 신청' 기각돼도 지분 9.05%만으론 '계륵' 가능성 기존 카카오스토리·카카오 미디어를 강화할 수도 있다.
카카오, SM 인수 시너지 폭발할까?
배재현 카카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2월 10일 열린 카카오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에스엠 투자에 대해 “IP에 기술적 역량을 결합하고 아티스트를 공동 기획하겠다”며 “팬 플랫폼 구축 및 IP 웹툰화에 나서고 글로벌 음원 유통도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가 에스엠을 카카오의 지배력하에 넣을 수 있다면 그동안 약점으로 지목받아왔던 글로벌 아티스트 라인업을 단숨에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카카오엔터의 K팝 아티스트는 더보이즈·아이브·몬스타엑스·크래비티 정도가 꼽힌다. 아이유나 안테나뮤직 소속 아티스트들은 결이 다르다. 여기에 에스파·엑소·NCT·레드벨벳 등 에스엠 아티스트들이 추가된다면 큰 시너지가 기대된다. 팬 플랫폼도 확보할 수 있다. 수익성이 검증된 에스엠의 ‘디어유 버블’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카카오엔터의 레이블인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들은 버블과 입점 계약을 체결했다.
카카오엔터가 ‘소녀 리버스’를 통해 보여준 세계관은 에스엠의 메타버스 세계관 ‘광야’와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카카오엔터가 최근 발표한 버추얼 걸그룹 ‘메이브’도 에스파·나이비스와 연결된다. 특히 투자자들의 엑시트를 해결해야 하는 카카오엔터 입장에서 에스엠에 대한 투자는 여러모로 이점이 있다. 카카오 측은 인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는 설명이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인수를 통한 우회 상장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황이다. 계획대로 에스엠 지분 9.05%를 확보한다면 다양한 경우의 수로 투자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SM 투자, 카카오에 ‘계륵’?
업계에서는 카카오의 에스엠 투자가 계륵이 될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시너지를 위해서는 하이브보다 많은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이브의 공개 매수가인 12만 원보다 더 높은 가격에 주식을 매수해야 할 수도 있다. 하이브가 공개 매수하기로 한 25%의 지분 가격만 7142억 원에 이른다. 1조 20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한 카카오여도 공개 매수가 경쟁이 붙는다면 부담스러운 가격임에는 분명하다. 카카오엔터의 재무적 투자자(FI) 입장에서도 에스엠 투자에 예상외의 금액이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영진·김민종 등 에스엠 아티스트들이 이수만 전 에스엠 총괄프로듀서의 편을 들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엔터사의 핵심인 프로듀서·아티스트들의 회유에 실패한다면 빈껍데기만 비싸게 사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카카오가 이번 에스엠 경영권 분쟁에서 발을 뺄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카카오엔터가 K팝 IP 확보 외에도 돈을 써야 할 곳이 충분히 많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카카오엔터는 스토리·뮤직·미디어의 세 가지 사업 부문을 영위하고 있어 K팝이 주력인 하이브와는 다르다. 모회사 카카오도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이 적자 전환하는 등 좋은 상황은 아니다. 특히 당기순이익 적자 전환에는 카카오엔터가 2021년 인수한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의 영업권을 손상 처리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우회 상장이 급선무라면 시장에서 거론 돼온 큐브엔터테인먼트 등 중소형 상장사 인수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
이수만 가처분 인용 여부와 지배구조 개선이 관건
우선 이수만 전 총괄이 제기한 카카오 투자에 대한 가처분 인용 여부가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예정이다. 인용 시 카카오의 추가 투자는 쉽지 않아 진다.
기각된다면 지분 9.05% 확보를 전제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열릴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주주 명부가 지난해 2022년 폐쇄된 만큼 이 전 총괄의 지분은 그대로 남아 있는 반면 카카오 측은 지분이 없는 상태로 주주총회가 열려 표 확보에 있어 불리한 입장에서 시작하게 된다.
지금까지 에스엠 경영진,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 측의 명분이었던 지배구조 개선도 하이브와 이 전 총괄이 지배구조 개선을 확약하며 명분이 약해졌다. 국민연금공단·KB자산운용 등 에스엠의 지배구조 개선을 중요시했던 기존 주주들의 표를 카카오가 어떻게 확보할지 주목된다. 다만 카카오 측은 “사업 제휴가 투자의 목적”이었다며 추가 투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 엔터업계 경영권 개선가능?
에스엠(041510)의 경영권이 하이브·카카오 중 어느 쪽에 넘어가더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에스엠의 기형적인 지배구조와 불투명한 내부거래 등이 개선된다는 점이다. 이수만 전 에스엠 총괄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이 이미 종료됐고 비상식적인 사후 정산 계약 역시 폐기됐다. 아울러 자회사 정리 등으로 지배구조도 개선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에스엠의 경영권 분쟁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만연한 불투명한 거래 관행과 지배구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분쟁이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서 비롯된 만큼 이 같은 적극적인 주주행동이 엔터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 분쟁으로 2/10일 종가 기준 11만 4700원까지 치솟은 에스엠의 주가는 오랜 기간 저평가 받아왔다. CJ ENM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이 전 총괄의 지분 인수에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가 돌기 전인 2021년 4월까지만 해도 에스엠의 주가는 3만 원대에 불과했다. 물론 이런 저평가는 다분히 이 전 총괄의 사익 편취에 따른 결과임을 업계 안팎에서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에스엠의 주주인 KB자산운용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후 2019년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제안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이제야 해결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라이크기획 문제와 배당 성향 확대, 비핵심 자회사 정리와 경영진 견제를 위한 사외이사 선임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당시 에스엠 측에서는 이 같은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상장된 엔터 기업의 지배구조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JYP엔터테인먼트와 비교하면 여실히 드러난다. JYP는 에스엠과 비슷하게 박진영 프로듀서가 15.22%, 국민연금공단이 7.25%를 보유한 지분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에스엠과 같은 불투명한 거래 구조 등을 지니지 않은 것이 가치 평가를 가른 큰 차이점이다. 특히 박 프로듀서는 일찌감치 1인 프로듀싱 체제를 끝내고 멀티 프로듀싱·레이블 시스템을 도입해 에스엠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해 3분기 951억 원의 매출로 에스엠의 절반도 못 미치는 JYP의 시가총액은 2조 6000억 원가량으로 에스엠(10일 기준 2조 7307억 원)과 맞먹는다. JYP의 이사회 구성도 에스엠과는 다르다. 에스엠이 현재 사내이사 3인, 사외이사 1인으로 이사회를 꾸리고 있고 모두 이 전 총괄의 측근으로 평가받았던 가운데 JYP는 박 프로듀서가 직접 이사회 사내등기이사 4인 중 1인에 올라 있고 4인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위원회를 두고 있다. JYP는 지난해 엔터 업계 최초로 ESG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시장과 주주들의 비난에도 수십 년 동안 공고했던 에스엠의 체제를 1년여 만에 뒤바꿔놓은 것은 얼라인파트너스다. 펀드를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 자산운용사와 달리 얼라인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주주들을 포섭했고 에스엠 이사회는 얼라인의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에스엠 측은 이사회 재구성, 지배구조 개선, 주주환원책 제고 등을 선언했다.
시장에서는 적극적인 주주행동이 가능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엔터 업계에 대한 영향력 확대도 예상하고 있다. 시스템이 아니라 인적자원 중심으로 돌아가는 엔터 업계인 만큼 아직도 불투명하게 경영되고 있는 엔터사들이 많다. 특히 대형사가 아닌 중소형 엔터사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2022년 논란이 됐던 이승기 노예계약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이승기의 소속사였던 후크엔터테인먼트는 이승기의 보수를 회계 조작을 통해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수익은 회사의 대표인 권진영 씨와 그 측근들이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터 업계는 이와 같은 불공정·불투명한 지배구조, 아티스트 계약, 회계 처리가 만연해 있어 기관투자가들이 투자를 꺼려왔으나 행동주의 펀드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상황이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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