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TT플랫폼 IP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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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플랫폼 IP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by 산골 피디 2022. 6. 20.

OTT가 야기한 IP 전쟁이 과열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한 제작 생태계에 대한 열망도 뜨겁다.

얼마 전 미국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를 새로 쓴 사건이 있었다. 78세의 ‘깐부’ 오영수가 국내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것. 그간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던 골든글로브의 보수성을 감안하면, 실로 <기생충>도 <미나리>도 이뤄내지 못한 쾌거다. 그렇다. 또다시, <오징어 게임> 이야기다. 이제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지겨울 정도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 사실상 <오징어 게임>이 남긴 여러 쟁점은 ‘K-콘텐츠의 재발견!’에서 끝날 성격의 것들이 아니다.

향후 미디어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화두이고, 이제부터 쭉 OTT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국내 창작자들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이 이른바 ‘넷플릭스 갑질 논란’을 야기한 IP(지적재산권) 이슈다. 지난해 말,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오징어 게임>의 경제 가치가 8억 9910만 달러, 한화로 1조 원이 넘는 수준이라 보도했다. 이는 총제작비인 250억 원의 약 42배에 이르는데, 넷플릭스 내부의 작품 성과 지표인 ‘임팩트밸류’를 통해 산출한 수치다.

문제는 실제 드라마를 만든 국내 제작사의 수익이 제작비의 10~20%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IP를 비롯한 모든 권리가 플랫폼에 귀속됐으니 추가 수익 배분을 장담할 수도 없다.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벌었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진 이유다.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1위’도 좋고 ‘한국 배우 최초의 골든글로브 연기상’도 좋지만, 결국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건 ‘수익’이 아닌가. 아무리 넷플릭스 최고경영자가 초록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한국 팀에 감사를 표했다 한들, 이빨 빠지게 고생해 남 좋은 일만 시켰다는 씁쓸한 뒷맛을 피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OTT 플랫폼에 IP를 넘기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OTT 콘텐츠는 오늘도 범람한다. 많은 제작자들이 기꺼이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며 OTT의 ‘오리지널’ 드라마를 생산한다. 이쯤 되니 궁금해지는 건 과연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의 등장이 ‘국내 제작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다.  이를 살피기 위해선 이전 상황부터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많은 관계자들은 “한국 드라마 생태계가 제작자에게 유난히 혹독하다”고 입을 모아왔다.

IP가 방송사에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고 제작비도 약 60~70%만 보존해주는 경우가 보통이라,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외주 제작사가 직접 영업을 뛰어 PPL이나 협찬 등을 따내야만 했다는 것이다.

초록뱀미디어의 신윤주 과장은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토로했다. “OTT나 SNS, 스트리밍 채널 등 새로운 플랫폼이 시장에 진입하기 전까지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채널은 지상파, 케이블 등 극히 소수의 레거시 미디어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에 창작물에 대한 IP가 채널에 귀속될 수밖에 없었고, 창작자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제작 및 납품하는 역할로 전락하게 됐죠.”


2021년 6월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김운호 도레미 엔터테인먼트 본부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평균 미니시리즈 제작비를 7억 원으로 잡을 경우 광고를 완판해도 3억 600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아 방영료(제작비의 60%)를 충족하지 못하는 구조인 데다 광고가 완판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단다. 신윤주 과장은 그렇기에 OTT의 출현이 제작사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치열한 한판 승부 중인 국내외 OTT 플랫폼들이 저마다 콘텐츠 라이브러리 확보에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수요가 공급을 큰 폭으로 앞지르는 상황이다. “다만 이들은 단순히 판권 구매를 원하기보다는 ‘오리지널’ 형태, 즉 제작비를 130% 수준까지 보전해주는 방식의 IP 자체 구매를 희망합니다. IP를 보유하고 있어야 해당 콘텐츠의 후속 편 제작이나 다른 장르로의 가공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자금력이 부족한 대다수 국내 중소 콘텐츠 제작사들이 OTT로부터 안전 마진 25~30%를 보장받고 IP를 그들에게 귀속시키는 형태로 제작을 진행하고 있고요.”

사실 OTT의 공격적인 투자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IP를 넘기는 거야 예전에도 늘 있어왔던 일이고, 번번이 적자에 허덕이던 제작사 입장에선 ‘작지만 확실한 이익’을 보장해준다는 측면에서 OTT가 내미는 손을 거절하기 어렵다. 막상 <오징어 게임> 같은 흥행작이 나오면 속이 쓰릴 순 있지만, 사실상 흥행을 장담하기 힘든 제작 상황에서 OTT가 안고 가는 위험 부담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단 손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창작자들이 투자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작품 제작에 집중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오징어 게임>만 해도 황동혁 감독이 처음 각본을 쓴 2008년 이후 국내에선 어떤 투자도 받지 못해 10년 넘도록 표류한 작품이니까. 다만, 이러한 수익 분배가 과연 공정한 것인가 묻는다면 누구도 그렇다고 답할 순 없을 거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넷플릭스가 모든 IP를 가져가고 제작사에 하청을 주는 수익 모델을 들고 나온 뒤 업계에는 콘텐츠 IP 배분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며 “제작비는 보존해줄 테니 IP를 전부 달라는 모델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모델이냐”고 반문했다.


국내 제작사들이 연합하는 이유

크리에이터 얼라이언스(이하 CA)는 이런 공공연한 문제의식 속에서 출범했다. 초록뱀미디어, 지담 미디어, iHQ, 김종학 프로덕션 등 국내 9개 미디어 제작사가 의기투합한 연합체인데, 지난해 12월 출범식 당시 “IP를 창작자들의 울타리에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 제작 플랫폼을 탄생시키기 위해 모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장의 수익을 위해 IP를 포기하기보다는 여럿이 힘을 합쳐 직접 IP를 확보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초록뱀미디어의 신윤주 과장은 “콘텐츠 IP는 창작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래야 IP를 재가공 또는 재생산하거나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재창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이제까지의 관행을 깨고 IP를 창작자들이 소유하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온전히 사전 제작할 수 있는 자금력과 인적 리소스의 결합, 더불어 콘텐츠를 이용해 부가사업을 펼쳐갈 수 있는 타 산업군과의 네트워크 등 폭넓은 인프라를 갖춰야 하고요.” 결국 이 지난한 싸움의 키(key)는 IP다.

오늘날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서 IP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이미 제작사들 사이에서도 OTT의 ‘제작비 보전’이란 안전망 대신 콘텐츠 유통 계약을 택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지리산>이 대표적인 예인데, IP는 제작사인 에이스토리가 소유하고 방송권만 국가별 채널에 넘기는 방식으로 계약이 이뤄졌다. 크리에이터 얼라이언스 CA 역시 향후 IP 확보를 위한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리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작년에 선보인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초록뱀미디어가 얼라이언스 중 한 곳인 지담미디어와 공동 제작한 작품이에요. 지금은 김종학 프로덕션과 함께 김재중, 진세연 주연의 <나쁜 기억 지우개>를 제작 중이고요. 현재 제작 라인업 중 90% 이상이 외주 제작에 집중된 상태지만 향후 5년 내에 자체 제작과 외주 제작의 비율이 5 대 5가 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크리에이터 얼라이언스(CA)가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국내 IP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 예측한다. 한국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흥행한다면 플랫폼에 창작자의 다양한 권리를 요구하는 시도가 계속되리란 전망도 높다. 최근 ‘2022 한국이미지상’ 시상식에서 디딤돌상을 수상한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IP를 독점할 수 없도록 한 프랑스 사례를 언급하며 “IP를 창작자도 공유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전했다.

실제 유럽연합에서는 자국 문화 보호를 위해 전체 VOD 콘텐츠 중 EU 제작 비율이 30%가 되도록 규제하는 ‘넷플릭스 쿼터제’ 도입에 합의한 바 있다. 국내의 경우 쿼터제에 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결국 제작사와 플랫폼이 서로 가치를 인정하고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이는 중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창작자의 지적재산을 보장해주는 생태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라는 것이다. 창작자들이 흔들리면 창작의 뿌리가 흔들린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분명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이미 OTT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면, 퇴근 후 맥주와 함께 즐기는 드라마 한 편이 일상의 낙이라면, 그럴수록 오늘의 제작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미디어 생태계를 움직일 수 있는 건 몇몇 제작사가 아닌 시청자들의 변화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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