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의 시대는 한물갔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지 휴대폰과 노트북으로 작업을 수행한다. 일에 대한 이러한 끊임없는 연결은 "일"이 끝나는 곳과 "인생"이 시작되는 곳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서양에서 1970~80년대부터 회자된 워라밸이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대다수 기업과 기관들이 워라밸을 조직문화의 주요 혁신 방향 중 하나로 보고 여러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 서양에서는 워라밸과 대치되는 ‘워라인’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차츰차츰 늘어나고 있다.
워라밸 vs 워라인
워라인은 ‘Work-Life Integration’의 약자로 일과 삶이 경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생활을 말한다.
워라밸과 워라인 중 무엇이 바람직한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구글은 워라밸의 손을 들어줬다.
2016년 자사 HR사이트 리워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구글러 중 일과 삶을 완벽히 구분 짓는 세그멘터(segmentors)들은 일과 삶의 경계를 모호하게 인식하는 인티그레이터(Integrators) 보다 더 행복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밤 9시 이후 업무 관련 스마트폰 사용은 수면의 양과 질 을 모두 감소시켜 다음날 아침 업무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워라인을 강조하는 버클리 경영대학원의 부학장 미셸 마르퀘즈(Michelle Marquez)는 “직장, 가정·가족, 공동체, 개인의 안녕, 건강 등 생활을 정의하는 모든 영역 사이에서 더 많은 시너지를 창출하는 접근법이 워라인”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심리적 웰빙 관련 전문가인 스테파니 해리슨(Stephanie Harrison)은 “워라인은 개인의 웰빙을 개선하고 직장에서 그들의 성과를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일과 삶을 나누는 워라밸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미래학자인 제이콥 모건(Jacob Morgan)도 미래사회에는 갈수록 일과 삶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워져서 일과 삶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중요해질 거라고 한다.
일과 삶을 통합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그렇다면 대체 우리들은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워라밸-워라인 모두 본질적으로는 공통된 것을 추구한다는 브리짓 슐트(Brigid Schulte·‘타임 푸어’ 저자)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리짓 슐트는 “워라밸과 워라인 둘 다 일을 위한 시간과 일 외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시간을 동시에 얻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찍부터 워라인을 강조해 온 와튼스쿨 스튜어트 프리드먼 교수(Stewart Friedman)은 일과 삶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를 경계한다. 삶이란 일과 가족, 공동체, 자아 간의 상호작용이며 이 4가지 모두를 동시에 이루는 통합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워라인은 이 요소들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결국 워라밸이든 워라인이든 본질적인 목적은 삶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다.
워라밸을 추구하면 ‘일에는 관심 없고, 개인 여가에만 집중하는 이기주의자’로 해석하거나,
워라인을 추구하면 ‘일에만 관심 있는 일 중독자’로 바라보는 관점은 각각이 지닌 의미를 부정적으로 왜곡 해석하는 셈이다.
결국 워라밸이냐 워라인이냐는 따지고 보면 중요치 않다.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어느 쪽을 택하든 근본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을 건강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하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구성원들은 저마다 삶의 형태에 따라 ‘일’을 대하는 관점을 제각각 가지고 있다. 따라서 HR 담당자는 각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일의 정의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만일 일을 ‘어쩔 수 없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의무’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일 외적인 삶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실제 많은 조직에서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일’에 대한 정의다. 심지어 다소 거칠게 일을 단정하는 경우도 많다.
‘일은 행복과 거리가 멀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워라인에 대한 부정적 해석을 강화시키게 된다.
워라밸에서 워라인으로 가야히는 이유
삶은 일과 구분될 수 없다.
직장에서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추구하는 의미나 가치, 좋은 목적을 실현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워라인은 일 중독과 구분하고 번아웃을 경계해야 한다.
일 외적인 삶에 의미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일 중독자들에게 워라인 관점에 입각해 일하는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경우, 최소한의 시간마저 ‘직장에서의 업무’에 할애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업무에서 성취감이나 성장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쉽게 번아웃에 이르기 쉽다. 회사 조직 입장에서도 결코 건강한 워라인 상태라고 볼 수 없다. 일 중독자들은 놀이나 취미, 가족, 공동체 등 일 외적인 요소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워커홀릭에게는 조직에서 워라밸 차원의 접근을 시도해 일 외적인 요소에서도 삶의 의미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임원에게 반강제적으로 연차 쓰게 만들기’와 같은 접근들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건강한 워라인 되기 위한 3가지 조건
사람들은 왜 워라밸 세그멘터와 워라인 인티그레이터로 구분하는 걸까?
조직문화 컨설턴트인 알렉시스 하셀버거(Alexis Haselberger)에 따르면 강력한 경계를 선호하는 이들(세그멘터)은 경계가 없을 경우 어느 한쪽이 자신의 삶 모든 영역을 차지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유동적이고 모호한 경계를 선호하는 이들(인티그레이터)은 스스로가 시간과 공간을 구조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업무시간&업무공간 선택 결정권을 갖는가?
조직에 적합한 월라밸-워라인 접근을 선택하는 기준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업무의 시간과 공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 의식’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자신의 업무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조직 차원에서 일 외적인 요소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강력한 경계를 만들어주는 ‘워라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반면, 업무 시간과 공간을 구성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갖고 있다면 스스로 업무 시간과 공간을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워라인’ 차원의 접근이 더욱 좋겠다.
업무 유연성이 보장되는가?
업무에 필요한 역량이나 결정 권한을 가진 직종, 유연한 업무 수행이 가능한 부서원들에게는 워라인 차원의 접근이 보다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업무역량이 부족하거나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에는 업무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워라밸 차원에서 일 외적인 요소에 대한 시간을 공식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할 수 있겠다.
조직이 추구하는 조직역량은 어느 정도인가?
조직역량에 따라서도 다른 접근을 해볼 수 있다. 구성원 각자의 주도성이나 창의성, 유연함을 갖춘 조직이면 구성원 스스로 업무에 필요한 결정을 내려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적시에 필요한 업무 행동을 하는 것이 워라인 차원의 제도나 시스템, 업무환경 구축이 효과적이다.
반면 경영환경이 고정된 시간과 공간에서만 이뤄져야 하고, 성과 달성을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업무 수행 시간이 필수적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워라밸 차원의 제도나 시스템, 업무환경 구축을 통해 구성원들이 일 외적인 삶에도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리하며
다시 정리해보자. 워라밸과 워라인, 둘 중 뭐가 맞을까?
이쯤 되면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게 그다지 의미 없는 논쟁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자연스레 이르게 된다.
조직문화 혁신을 위해 어느 쪽을 택하든 근본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을 건강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하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워라밸이냐 워라인이냐는 따지고 보면 중요치 않다. 결국 나의 일이 내가 추구하는 의미나 가치, 좋은 목적을 실현하는 데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를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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