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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회가 진실보다 ‘믿고 싶은 거짓’에 쉽게 빠지는 이유

by 산골 피디 2023. 8. 26.

지적인 사람들 조차 거짓 정보를 잘 믿고 유사 과학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 에선 인간이 인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에 여러 정보를 비교하고 과학적으로 추론하는 것을 귀찮아한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거짓’을 선택하게 된다.
나날이 증폭되는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사람들을 비과학적 사고로 이끄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불안을 빠르게 없애려는 인지적 종결 욕구는 잘못된 믿음을 공고히 하고, 새로운 정보의 수용과 믿음의 교정을 어렵게 만들며, 교차 검증과 토론 문화가 정착되는 것을 방해한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까지 높은 불안으로 인해 유사 과학에 심취하고 의지할 곳을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 의사결정을 꾀하는 조직이라면 개인 혹은 집단 차원에서 경험하는 불안을 정확히 진단하고 사고를 흐리게 만드는 부정적 감정을 식별, 완화해 줄 사회적 처방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사람들은 왜 과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가.
왜 진실이 아니거나 혹은 진실이라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쉽게 현혹되는가.
심리학계는 이 질문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주로 인간의 인지적 허점을 파고든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정도로 가짜 뉴스나 날조된 음모론, 그럴듯해 보이는 헛소리(pseudo-profound bullshit), 망상, 미신에 빠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믿음에 유독 취약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인지적 특성이 무엇인지, 그 차이점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가령, 데이비드 란드 MIT 경영과학 교수와 고든 페니쿡 코넬대 심리학과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은 인간의 인지적 ‘편향(bias)’을 넘어 인지적 ‘게으름(laziness)’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인간이 새로운 정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과학적으로 추론하는 것을 귀찮아 하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거나 사실무근인 정보에도 잘 넘어간다는 게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인간이 최대한 지적 노력을 아끼는 ‘구두쇠’라는 얘기다.

이런 실증적 근거를 토대로 정보처리의 어려움을 인지적 게으름의 탓으로 돌리기는 쉽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쏟아지는 정보의 출처와 인과관계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적으로 사고하라’는 다그침도 생업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런 인식론적 접근에 치우치면 자칫 다양한 사회적 맥락, 즉 사람들이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거짓’을 선택하는 동기(motivation)나 감정(emotion) 등의 효과를 간과하기 쉽다.

개인이나 조직을 둘러싼 환경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안(anxiety) 등의 감정은 사람들의 과학적 사고를 가로막는 강력한 변수 중 하나다. 초조한 개인에게는 애매하고 지루한 진실보다 빠르고 명쾌한 거짓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따라서 불안을 조장하는 거시적인 배경을 무시한 채 미시적으로 개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오히려 현상의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방해하기 쉽다. 이처럼 주변 환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오늘날, 어떻게 하면 개인과 조직이 비과학과 유사 과학에 맞서 더 분별력 있는 ‘근거 기반’의 사고를 할 수 있을까?
 


1.허위 정보(가짜 뉴스)에 대한 믿음

의사결정자들이 거짓 정보를 잘 거르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불안이 그중 하나다. 불안한 사람들은 빠른 해답을 좇는다. 
그런데 대개 유사 과학은 단순 명료한 반면 과학에는 많은 단서 조항이 달린다. 
‘이 조건에서는 이게 맞는데 저 조건에서는 저게 맞다’는 식으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고 ‘경우에 따라 다르다’라는 결론밖에 내놓지 못한다. 당장 ‘예’와 ‘아니요’같이 답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즉각적인 가짜 뉴스가 진실보다 유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안은 개인 차원뿐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렇게 애매하고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빠르게 종착역에 도달하려는 심리를 ‘인지적 종결 욕구(NFC, Need for Cognitive Closure)’라 부른다. 인지적 종결 욕구가 강한 개인과 집단일수록 하나의 ‘정답(The answer)’보다는 ‘아무 답(Any answers)’이든 내놔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다. 그러다 보면 잘못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수용하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쉽다. 특히 한국인들은 집단적으로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높은 편이고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일사불란하게 따르고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업 등 조직은 이렇게 종결 욕구가 강한 개인이 리더가 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처럼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취합하고 업데이트해야 한다. 한번 받아들인 정보, 한번 내린 결정을 고수하고 교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에 ‘꽂히면’ 추후 사실무근으로 밝혀져도 바로잡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믿음의 교정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대니얼 길버트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데카르트적인 사고자가 아니라 스피노자적 사고자라고 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실증 연구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통적인 데카르트의 사고 모형에 따르면 인간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여러 정보를 수집해 비교, 판단한 뒤 받아들일지 말지를 최종 결정한다.
반면 스피노자의 모형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보를 중립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이해와 동시에 일단 참이라고 전제한다.
이해와 수용이 동시에 이뤄지는 셈이다.
이후 다른 증거가 제시되면 부가적인 판단을 하겠지만 한 번 수용한 정보를 버리기는 쉽지 않다.
이처럼 스피노자적 인간이 보이는 중요한 특성은 ‘반증의 어려움(disconfirmation difficulty)’이다.
이는 왜 사람들에게 어떤 정보가 거짓이고, 가짜 뉴스라는 것을 알려줘도 이미 굳어진 믿음을 잘 바꾸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반증 증거를 찾으려 하지 않거니와 자기 믿음을 강화하는 증거를 선호하기 때문에 교정이 어렵다.

의사결정자가 거짓 정보에 대한 믿음을 고수해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나?
임직원들의 인지적 종결 욕구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새로운 리더십에 요구되는 덕목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미 에드먼드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조직의 리더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인지적 종결 욕구가 강한 리더일수록 구성원의 말을 듣기에 앞서 자기가 결정을 내리고 정리까지 끝내기 때문에 조직 내 심리적 안전감을 저해한다.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리더가 표면적으로는 결단력이 있고 카리스마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혼재돼 있고 불안이 높은 환경에서는 심리적 안전감을 떨어뜨려 궁극적으로 편향된 정보처리와 의사결정을 촉진할 수 있다. 심리적 안전감은 ‘구성원이 다른 의견을 내고 대인관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interpersonal risk-taking) 그 대가로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골자로 한다. 이를 조직 차원에서 보장하려면 여러 상충 정보에 대한 검증과 날 선 토론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고, 이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리더십 측정 항목과 척도가 바뀌어야 한다.

편향된 믿음이 고착되는 것을 막으려면 토론과 검증의 문화가 중요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길버트 교수를 필두로 한 연구들의 시사점도 반론(counter-argument)을 최대한 풍부하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고, 과학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느냐는 이런 정보의 교차 검증을 개인이나 조직이 얼마나 루틴으로 삼느냐에 달려 있다.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문화가 정착되려면 리더가 얼마나 심리적 안전감을 보장하는지도 측정해야 하지만 회사의 ‘도덕 기반(moral foundations)’도 측정해야 한다. 
미국의 유명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가 주창한 도덕 기반 이론에 따르면 집단마다 도덕성 판단의 근거 혹은 기초가 다르다. 그런데 집단주의적 도덕 기반이 판단에 개입되면 구성원들이 내는 의견의 ‘내용(content)’이 아니라 ‘어조(tone)’가 중요해진다. 의견의 내용이 충분히 논리적이고 사실에 가깝다 할지라도 어조에 따라 조직 내 긴장이나 적대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충성이나 권위가 도덕 기반이 되는 집단에서는 배신을 암시하거나 위계를 흔드는 발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발언이 내용의 진위와 무관하게 배척당한다. 일단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진실이 중요하지 배신이 중요한가?”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조직 기저에 깔려 있는 도덕 기반을 정확히 이해해야 구성원 간 불필요한 오해 없이 자유롭게 의견 공방이 오갈 수 있다.
 

신속한 결단이 필요한 상황도 있고 모든 정보를 검증하고 숙고할 시간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의사결정자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전문성은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는 바로 자신의 직무와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 즉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이 축적된 정도다. 
매번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할 수 있으려면 도메인 지식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과학적 태도다. 도메인 지식과는 별개로 과학적 추론의 규칙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인과 추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경영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인간이 직면하는 여러 정보 처리와 판단의 어려움을 개인의 책임, 즉 인지적 게으름으로 환원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게으른 게 당연하고, 소위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더 특이한 것이다. 인지 욕구(Need for Cognition)가 강하고 생각하기를 즐기는 소수만이 주변 단서에 휘둘리지 않고 본질적인 정보를 더 정교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라면 풍부한 도메인 지식과 과학적 추론의 규칙을 학습해 이런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2. 유사 과학에 대한 믿음

유사 과학을 잘 믿는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이나 한국 사회의 특수한 맥락이 있는지 궁금하다.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이 논리적 모순에 더 관대한 경향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MBTI 같은 성격 유형 검사가 인기를 끄는 현상은 일부 ‘바넘 효과(Barnum Effect)’로 설명된다. 바넘 효과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정보가 자신에게만 특별히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사실 MBTI를 비롯한 성격 검사 결과지를 보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상충된 정보들이 많다. “당신은 외향적이지만 때때로 홀로 있고 싶어 하네요” “당신은 자유롭게 살길 원하지만 누군가 꽉 잡아줬으면 하네요”라는 식으로 누가 들어도 맞을 법한, 틀리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모순에 민감하고 형식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인들은 대체로 이런 풀이를 접했을 때 ‘A와 not A가 공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반면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A와 not A가 공존할 수 있다’고 편하게 받아들인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모순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인식론적 전통이 동양인이 유사 과학을 더 잘 믿는 문화적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교문화 연구를 진행하는 심리학자 카이핑 팽 중국 칭화대 교수는 이렇게 동양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순이나 상충 정보에 수용적인 경향을 ‘순진한 변증법(naïve dialecticism)’5 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여기서 ‘순진한(naïve)’의 의미는 ‘비전문적’ ‘비과학적’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동양적 세계관에서 모순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A와 not A가 모두 참일 수 있다’는 생각도 서양의 논리적 추론과 대비되는,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최근 MBTI를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 역시 유사 과학이라고 보는가?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검증된 도구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MBTI의 효용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이런 유사 과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데는 심리학자의 책임도 있다. 
MBTI가 매력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고 싶어 하고, 타인을 알고 싶어 하고, 미래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한국 등 동양의 문화가 개인이 자아를 확립하고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을 억눌렀기 때문에 개인은 늘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불안에서 벗어나 확실한 답을 구하려는 심리가 있는데 이 답을 제시해 줄 만한 MBTI보다 더 타당하면서 더 흥미로운 척도가 없다. 
심리학에서는 주로 인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인을 외향성, 우호성, 신경성, 개방성, 성실성 등 5대 특성(Big5 Personality Traits)6 으로 설명한다. 이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가장 타당성을 인정받고 범문화적으로 통용되는 분류 체계지만 일단 재미가 없다. 당장 나와 남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상급 병원 의사의 과학적인 진단보다 1차 응급처치로서 MBTI 같은 성격 유형이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 유사 과학이라 비판하기에 앞서 더 타당하면서 재미있는 척도를 개발하는 게 과학자들의 숙제다.

인간의 성격 유형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도 있나?
인간의 성격을 과학적으로 유형화하려는 시도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일례로, 2018년 마르틴 게를라흐 노스웨스턴대 박사 등이 행동과학 저널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r)’에 게재한 연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연구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개인들의 5대 성격 특성(Big5 Personality Traits) 점수 데이터 150만 건을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 방식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흥미롭게도 인간 성격이 4개의 큰 유형인 ‘평균형(average)’ ‘내성형(reserved)’ ‘자기중심형(self-centered)’ ‘롤모델형(role model)’으로 구분되는 것이 확인됐다. 그동안 학계에서 금기시됐던 성격 유형이 실재할 수 있다는 것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밝힌 셈이다. 아직은 통계적 현상일 뿐이고 각 유형의 세부 특성에 관한 더 면밀한 분석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이런 연구가 이어지다 보면 유사 과학이라는 오명 없이 MBTI와 대적할 근거 기반의 성격 유형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에서도 한국인의 5대 성격 요인 점수 데이터를 모아 한국인의 성격 유형이 어떻게 구분되고, 유형별로 어떤 변수에서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가 유독 이런 MBTI를 비롯해 사주, 점술, 타로 등에 열광하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대 연구를 하는 진 트웽이 미 샌디에이고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불안을 경험한다. 왜 이렇게 불안한지를 진단했더니 주된 원인으로 경제적 불확실성, 즉 직장을 찾기 어렵고, 부모로부터 받는 유산이 줄고, 상속 시기가 점점 늦춰지고 있는 점이 꼽혔다.
아울러 또 다른 연구들은 젊은 세대의 ‘완벽주의’ 성향이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데 주목한다. 완벽주의란 개념에는 세 가지 하위 차원이 있다. 첫 번째는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높은 기대, 그리고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에 대한 박한 평가다. 두 번째는 사회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높은 기대, 그 기대에 못 미치는 나에 대한 박한 평가다. 마지막이 내가 타인에게 가지고 있는 높은 기대, 그 기대에 못 미치는 타인에 대한 박한 평가다. 이 중 두 번째 차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가 청년들에게 기대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본업을 똑 부러지게 잘하고 ‘갓생’을 사는 ‘일잘러’여야 되는데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삶을 즐기고 자기 취향이 있어야 한다는 게 언뜻 개인의 해방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굴레이자 압박이 될 수도 있다. 완벽한 자녀, 친구, 파트너, 부모가 돼야 한다는 높은 기준 속에서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는 이들이 MBTI, 사주, 점술 등에 의지해서라도 나를 찾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MBTI, 사주, 점술 등을 조직의 의사결정에 접목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결국 의사결정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데이터를 보는 것이고, 하나는 고전을 보는 것이다. 
사주, 점술, 주역 등이 때로는 데이터 과학이라고 포장되기도 하고, 인문학이라고 포장되기도 하는 것 같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전은 큰 그림은 제시하지만 구체적인 맥락에서 통찰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만족을 위해서는 A/B 테스트를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듯이 실험 데이터를 얼마나 철저히 받아들이는지가 경영 성과를 가를 수 있다. 고전을 탐구하고 사물의 이치, 본질, 기원 등에 지나치게 천착하다 보면 자칫 논리의 엄밀함, 사고의 치열함에서 더 멀어질 위험이 있다. 물론 선택은 의사결정자 개인의 몫이지만 인지적 게으름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학적으로 추론하고, 인문학적 통찰을 여기에 얹는 식으로 활용해야 한다.

비과학적 믿음의 배경에 불안이 있다면 이를 기업 등 조직 차원에서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불안이라는 걸 단순히 ‘마음 관리’로 한정하면 마음챙김 등 명상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겠지만 정말 내공이 깊은 사람이 아닌 한 개인이 스스로 내면의 불안을 다스리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ption)이 필요하다. 조직이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은 불안한 사람들끼리 좁은 울타리(small circle) 안에서 서로의 비이성적 믿음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의 대가인 리처드 니스벳 미시간대 교수가 1990년 ‘창의성이라는 적을 무찌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정리한 ‘반창의성 편지(The anticreativity letters)’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에세이는 창의적이지 않고 평범해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거꾸로 창의성의 조건을 곱씹어 보도록 한 글이다.  이 글을 보면 “기업이든 대학이든 정부든, 조직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게 만드는 법”으로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게 만드는 것”을 꼽는다. 같은 분야의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의 교류는 쓸모없는 시간 낭비로 여겨야 ‘진부함’에 이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불안한 개인이 편향된 사고를 하고 잘못된 믿음을 고착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의도적으로 자신과 다른 소속, 다른 직종이나 직무, 다른 지리적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사회적 처방이 불안 등 개인 내면의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2020년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는 인간이 단지 물리적으로 다양한 환경을 넘나드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됐다.9 연구진은 미국 뉴욕과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참가자 122명의 위치를 추적해 이들이 하루 동안 얼마나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니는지를 나타낸 RE(방랑 엔트로피, Roaming Entropy) 값과 감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봤다. 그 결과, 무조건 이동이 잦다고 해서 이 관계가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자극이 없는 환경 대신 ‘새로운(novel)’ 환경을 많이 찾는 사람일수록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렇듯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 자신의 협소한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단순히 가짜 뉴스나 유사 과학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편향된 사고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심리적 웰빙과 정신 건강을 지키는 데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도 어떻게 다른 업종이나 직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다양한 도전과 경험에 노출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과학적 의사결정을 도모하는 조직에 심리학자로서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하면 인간이 정보를 수용하고 기각하는 인지적 과정이 결국 감정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불안을 빼놓고는 사람들의 비과학적 사고와 판단을 설명할 수 없다. 불안을 회피하려는 심리가 허위 정보 및 유사 과학에 대한 믿음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기업도 조직 차원에서 임직원이 경험하는 불안이나 부정적 감정을 최소화하고 행복 등 긍정적 감정을 북돋아 주는 웰니스(wellness)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리적 웰니스는 물론이고 얼마나 다양한 사람과 잘 어울리고 관계 맺는지에 대한 사회적 웰니스, 재정 상황이나 건강은 괜찮은지에 대한 경제적, 신체적 웰니스를 각각 진단하고 맞춤형 처방을 내릴 필요가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은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임직원의 우울증 등 일니스(illness), 즉 병원에서 치료해야 할 수준의 질병 예방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질병으로 발현되지 않은 경미한 정도의 불안, 외로움, 무기력 등의 감정 관리는 개인에게만 맡겨 둔다. 하지만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긴 부정적 감정이 사고와 판단을 흐리게 하고 과학적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이 임원들과 팀원들의 멘털 웰니스를 진단하고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개인 차원과 집단 차원의 불안을 해소하고 건강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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