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잡지 못할 때 위로가 되는 말...
한 때 삼척MBC 사장님으로 계시면서 #산골음악회 기획에 힘을 실어주신 선배님
구영회 사장님(개인적으론 대학 선배)이 지리산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책을 내셨다.
"꼭 자네에게 필요한 책 일 듯하여 추천하네.."라는 말씀에
일종의 의무감으로 일단 책을 펼쳤는데...
읽어 내려가면서 그 동안 잃고 있던 것들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걸 느꼈다.
미래에 대한 마음이 불안해 다 잡지 못할 때...
어떡하면 좋을 지 고민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는데...
이 책의 몇 구절이 위안이 되어 몇 글자 나눈다.
"마음이란 원래 잡히지 않는 것이야.
그러니 마음을 잡으려는 그 자체를 내려놓아 봐.
마음속에서 뭔가 '전투'를 벌인다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마음이 들 때마다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내려놓아 봐.”
'MBSR (마음 알아차림 명상을 통한 스트레스 완화)로
잡히지 않는 마음을 다루는 길이 있을까?
“이런 모든 상황을 한 방에 또는 점차적으로 날려 버릴 수 있는 길이 있지.
그건 바로 자기 내면의 마음속 상황들을 그때그때 알아차리는 일이야.
자기가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혹은 '알아차리면서 지내는 것이지. '
알아차림이 관건이자 열쇠라네.
생각이나 감정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것들일 뿐 자네의 지속적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네.
생각은 자네가 아니고 감정도 자네가 아니야. 만약 자네가 생각이나 감정이라면
그 생각과 감정이 지나가 버린 뒤에도 함께 사라지지 않고 버젓이 남아 있는 자네는 뭐란 말인가?
자네의 본질은 따로 있어.
그 본질이 바로 진짜배기 자네라고 할 수 있지!”
마음속이 시끄러운 사람은 날마다 두 개의 전쟁터를 맞이한다.
하나는 마음속 전쟁터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마음이 밖으로 표출되어 세상과 부딪치는 전쟁터다.
마음은 참으로 신기해서 언제나 주문한 그대로 한 치도 어김없는 정확한 택배를 받는다.
화를 버럭 낼 때 화가 재빨리 대령해 있고 욕심을 부리면 어느새 욕심이 안방에 앉아 있다.
당신과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주문할 것인가?
숲 속에 들어가 명상하는 과학자를, 모차르트를 즐겨 듣는 엔지니어를 우리는 매우 소중히 여겨야 한다.
과학이란 갈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 를 깨닫는 학문이 아닌가?
사람이 평화로워진다는 것은 '삶의 완성'이다.
평화로운 사람은 삶과 다투지 않는다.
인생을 가장 잘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평화이다.
삶이란 결국 먹고사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순간순간을 얼마나 의미 있게 누릴 것이냐는 퀄리티, 즉 질質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자기가 처한 조건보다는 있는 그대로에 대한 '만족'의 문제라는 것을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분명히 느낀다.
특히 삶 전체는 본질적으로 아주 소소한 '일상의 퇴적(쌓임)' 그 자체라는 것을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알게 된다.
일상은 행복이 허술한 차림으로 대수롭지 않게 변장한 것이다.
일상은 삶을 노래하는 오선지 위의 숱한 음표다.
일상은 사람을 가리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처지에 따라 특히 마음 두기에 따라
주어지는 일상의 폭과 깊이는 천차만별로 다양하다.
일상은 저절로 공짜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잔잔하고 평화로운 방향으로 움직여서 발견해내는 '보물이다.
일상은 당신을 거짓으로 대하는 법이 없다.
아침에 깨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일상은 온종일 당신 앞에 지천으로 수두룩하다.
다만 일상은 당신이 일상을 온전하게 대할 때에만 당신 앞에 대령된다.
일상은 당신의 마음이 고즈넉하고 여유를 가진 자석'이 될 때,
그 순간에 수없이 그 자석에 달라붙는 작은 쇠 부스러기와 같다.
코로나 탓에 일상은 우리에게 숨바꼭질하듯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하지만 일상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일상'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잔잔하게 펼쳐지는 사람은 분명히 복 받은 사람이다.
마음을 일상의 잔잔함에 잘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처럼 일상이란 삶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충분조건이다.
인간의 일생은 하루하루 일상의 축적물이다.
일상이 쌓여서 그 사람의 일생이 된다.
나의 일상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의 일상도 소중하다.
서양에 이런 속담이 있다.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 보라.”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1.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 다시 말해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2. 남을 위할 줄 모르고 자기 혼자만의 이익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기주의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
김형석 교수의 가르침에 비추어 살핀다면,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반대로 살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놓인 처지에서 만족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남을 배려하며 함께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일 것이다.
결국 행복과 불행이란 평소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평생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길에서,
훗날 자기 자신이 살아온 모습을 되돌아볼 때
베푼 일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 사람의 마지막은 무척 허탈하고 쓸쓸할 듯하다.
산마을의 인생 고참 노인들이 가끔 나에게,
즐겁게 사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이좋게 살면 베스트 인생이라고 귀띔해 주는 것은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안겨 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란 '마감'을 깊이 받아들여 거기서부터 되돌아 나오면서 펼쳐질수록
더욱 알차고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다지게 되었다.
존재감이란 자기 바깥에서 찾아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마주할 때 비로소 저절로 드러나는 '내면의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존재감을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의존해 부여받는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허방임을 나는 깨우치고 있었다. 관계나 명함들은 진정한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하늘로부터 육체와 호흡을 선물로 받아
땅에서 태어난 그냥 하나의 '생명 존재' being라는 각성을,
나는 수없는 나 홀로 시간들 속에서 건져냈다.
내가 세속적인 인맥, 돈을 멀리 두고 혼자 고독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간단했다.
길게 남지 않은 나의 인생을 '나답게 살고 싶어서였다.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집중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참다운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서였다.
내 안에서 저 산과 저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그 존재였다.
그 존재가 군더더기를 벗어 버린 바로 '나'였다.
삶의 '원형'은 이러하다.
삶은 뜻하지 않은 길모퉁이에서 삶을 스스로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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