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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하면 적당할까?

by 산골 피디 2023. 4. 10.

 
일주일에 몇 시간 일해야 적절할까?
수 세대에 걸친 오랜 질문이다.

인류가 일의 노예가 된 이유

1700년대 말 이후 산업혁명이 세상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획기적인 조명의 발명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밤에도 일을 계속하면서 인간은 고된 노동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지난 6,000년 동안 인간은 어둠 속에서 그리 밝지 않은 기름 램프나 양초에만 의존해야 했다.
낚시나 숙박업처럼 밤에 하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낮에 일했다. 중세 말과 근대 초에는 도시민들조차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고, 인구 대부분이 여름에는 더 오래 겨울에는 더 짧게 일했다.
1550년 무렵 35만 명이 거주했던 유럽 최대의 중심지인 파리 같은 도시나 항구에서 인쇄 염색 등의 다양한 직종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1700년대 말 제네바의 발명가 프랑수아 피에르아메데 아르강 Frangois- Pierre-Amedee Argando] 발명한 오일 램프는 최대 16시간 동안 불을 밝힐 수 있었다. 동시에 스코틀랜드인 윌리엄 머독 william Murdoch은 가스를 태워 불을 밝히는 방식의 조명을 개발했고, 1800년대에 들어선 후 첫 10년 동안에는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 Humphrey Davy가 최초로 전기 아크등을 발명했다. 19세기말에는 백열등과 형광등이 거리와 가정 그리고 일터를 밝혔다.
이후 노동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공장과 사무실은 원한다면 밤새 불을 켤 수 있었다.
산업혁명이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스모그, 빈민가, 어린이노동, 수질오염, 전염병, 자유방임주의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이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도시의 공장에서 일하는 일부 노동자에게는 일 이외의 삶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했고 쉬는 날은 거의 없었다.
1802 년 영국은 아동이 노역장이나 타일 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했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1833년에는 보다 실질적인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10~13세 어린이는 일주일에 48시간, 14~18세 청소년은 일주일에 69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노동자는 일요일에도 쉬지 못했다. 가톨릭이 국교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1830년대 프랑스에서 노동자는 일주일에 7일 일해야 했고, 1906년에 이르러서야 일요일이 휴일로서 법적으로 보장받았다.
오래지 않아 대부분의 일터가 공장과 같은 근무시간을 도입했고,
이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업무시간 역시 길어졌음을 의미했다.
1800년대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산업화된 국가에서 노동운동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기준을 쟁취하고자 필사적인 싸움을 끈질기게 이어나갔다. 일찍이 노동시간을 제한한 핀란드나 우루과이, 미국의 경우 처음에는 일부 기업으로 시작해 점차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1920년대에 정부 차원에서 법제화했다.

한발 늦었던 영국의 경우, 1998년이 되어서야 주 48시간 기준을 받아들였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몇몇 고위험 직업군을 제외하고서 노동자들은 서명 한 번만으로 쉽게 주 48시간의 울타리에서 이탈할 수 있으며, 심지어 서명을 강요받고 있다.
1930년대 영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48시간으로 여전히 대단히 길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캠프리지대학교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가 태어났던 1880년대에 영국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56시간(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미국보다는 짧은 시간이었다)을 일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매우 대담한 예측이었다.
 
케인스는 〈우리 후손의 경제적 가능성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유명한 글에서 기술 발전. 특히 농업 광업 제조업 분야에서)이 이어지면서 미래의 경제는 일주일에 15시간 노동으로 충분히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1930년에 앞으로는 '4분의 1의 노력으로' 이때까지 만들어진 모든 것을 생산하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비록 오늘날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영국 약 37.5시 간, 미국 34시간, 멕시코 43시간으로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긴 주당 노동시간을 여전히 유지 중이다. 2030년대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케인스가 예언한 여가의 황금시대를 실현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케인스라 해도 지금의 기술 진보까지는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의 비전이 실현되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의 윤리에 근간을 둔 우리 사회의 인식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인구가 유대 기독교나 이슬람 전통에 뿌리내린 사회에 살고 있다.
이들 종교에서 일이란 신이 부여한 재능을 최고로 발휘하는 신성한 행위다.
즉 노동은 숭고한 것이다.

특히 유럽을 떠나 오늘날 미국 땅에 자리 잡은 청교 도주의자와 칼뱅주의자들은 지극히 극단적인 개신교 교리를 따른다. 16세기 신학자 장 칼뱅 John Calvin에 따르면, 물질적 번영은 자신이 신에게 선택된 사람이며 죽을 때 천국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일종의 암시다. 이런 일 중심적인 믿음이 경제 발전기에 어떻게 미국 사회에 스며들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또한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공을 핵심 개념으로 삼는 개신교의 노동윤리는 칼뱅주의 기독교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신약성서)의 상당 부분을 재해석해야 했지만 말이다. 특히 아담과 이브가 받은 형벌이 노동이라는 에덴동산 이야기는 완전히 뜯어고쳐야 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노동이 신성한 것임을 말해주는 증거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칼뱅의 주장은 400년이 흐른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 치고 있다.
최근 한 연구는 프로테스탄트 국가의 실업자는 그 밖의 다른 국가의 실업자보다 훨씬 더 심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연구원들은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일이 없는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일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하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삶 곳곳에 만연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부지런히 일하는 노동자를 칭송한다.
동시에 일을 하지 않거나 못 하는 사람들은 용인되 않는다. 우리 사회가 일하지 않는 혹은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 흔히 사용하는 경멸적인 표현을 떠올려보자.
게으름뱅이, 부랑자, 놀고먹는 사람, 무직자, 실업자…...

일이 자신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스스로를 특정한 유형의 직업인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거품처럼 팽창해 현대인의 삶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케인스는 자유방임주의와 빅토리아 시대의 기독교에 도전했다.  
케인스는 지난 4세기에 걸쳐 종교가 유럽과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도덕적 기반을 창조했는지 연구했다.

“우리는 인간의 가장 혐오스러운 자질을 가장 높은 미덕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노력하고 인내하도록 훈련받아왔다."

사실 케인스가 일주일 15시간 노동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한 인물은 아니다.
케인스가 <우리 후손의 경제적 가능성>을 쓴 지 30년 후,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2 년 후 인류학자들은 산업혁명보다 훨씬 앞서 기원전 인류가 수렵채취 활동을 하며 살아가던 시절부터 일주일에 15시간 기준의 노동을 실현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8년 인류학자 리처드 B. 리 Richard B. Lee가 발표한 논문은 보츠와나공화국의 쿵족의 삶을 파헤쳤다.

"도브의 부시먼족 성인들은 일주일에 2일 반나절만큼 일했다. 노동시간이 하루 평균 6시간 정도로, 척박한 환경임에도 식량을 구하는 데 일주일에 12~19시 간만 바친 셈이다. 부족 내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28일 중 16일 사냥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일주일에 최대 32시간 일했다."

이처럼 수렵채집 사회에서 사람들은 위기나 기아가 닥쳤을 때만 필사적으로 일했다.
식량을 저장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먹을 만큼 양식을 구하고 나면 다른 활동으로 눈을 돌렸다.

1970년대 마셜 살린스 Marshall Sahlins가 오랫동안 나미비아 공화국과 보츠와나 공화국의 주호안시 부족을 추적하면서 쓴 논문은 그들이 일보다는 공예와 사교, 음악 같은 활동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1990년대부터 주호안시 부족을 연구했던 인류학자 제임스 수즈먼 ames suman은 그들 삶의 방식이 적어도 4만 5,000년 혹은 9만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뚜렷한 유전학적. 인류학적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수즈먼은 이러한 삶의 방식이 주호안시 부족의 문화가 그리스 로마 문명이나 마야 문명보다, 그리고 우리의 산업사회 및 후기 산업사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지적한다.


일하는 인간의 탄생

그렇다면 수렵채집사회가 솔로 워커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일을 인간의 당연한 의무라고, 역사적으로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중심을 차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럴까?
해부학적 관점에서 오늘날 인류는 30만 년 전에 처음 출현했다.
그리고 1만 년 전까지 농사를 짓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96퍼센트가 넘는 기간 동안 수렵과 채집으로 살았다는 의미다.
일주일에 15~16시간만 일하면서 말이다.

수렵 채집사회가 끔찍하지만은 않았다.
수렵 채집사회에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짧아 보이는 이유는 유아 사망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유아 사망을 제외하고 수렵채집인의 사망 나이 최빈값(주어진 자료 내에서 가장 많은 빈도를 나타내는 값)을 살펴보면 그들의 기대수명은 70세에 가깝다. 즉 수렵채집인은 유아기를 무사히 넘긴다면 70세까지 살아남았다.
오늘날 선진국의 평균 기대 수명은 80세다.

우리는 일에 몰두하지 않고, 부지런하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삶을 원시적이고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수렵채집인이 끔찍하고도 짧은 삶을 연명하다가 괴롭게 죽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일에 집착하는 오늘날의 문화를 보다 진화한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이성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연약한 초현대 인류는 백신과 항생제와 와이파이 없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 삶의 방식은 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
약 1만 년 전 인류가 유목생활에서 벗어나 특정 지역에 정착해 공동체의 삶을 시작했을 때 인간의 삶과 노동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농사는 불안정한 삶의 방식이었다. 기후가 좋을 때는 풍요를 누리고 인구가 증가했지만, 기근이 발생하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농업이 시작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잉여생산이 가능해졌다.
잉여생산물이 있으면 기후가 나빠도, 농사가 실패로 돌아가도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이제 노동의 목적은 충분한 먹을거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되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수렵하고 채집하는 삶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힘들었을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가와 휴식, 즐거움으로 넘쳐나는 길고도 좋은 삶이었을 것이다. 일은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수단일 뿐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일은 새로운 현상이고, 꼭 인간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일이 반드시 삶의 핵심 축으로 삼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은 일과 시간 그리고 성취에 관한 우리의 인식에 너무나 깊숙이 스며들어서 누구도 이러한 믿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직장에서는 흔히 일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회사의 공식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보통 더 일찍 출근해 더 늦게 퇴근했하기도 한다.
책상에 오랫동안 붙어 있는 것이 업무에 대한 열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의 사무직 노동자가 그렇듯 실제로 앉아 있는 시간의 절반도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루에 8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하루에 2시간 53분 일하는 노동자에 비해 덜 생산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성과보다 일하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대한 비즈니스 조직 문화의 현주소다.

이를 수행적 업무 performative work라고 부른다.
“직원들에게 오후 5시까지만 일하라고 지시하는 인사 관리자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관리자는 이렇게 말하죠.
 
“이번에는 존을 승진시킬 겁니다. 그는 주말에도 특근하고 밤새워 일했으니까요.
이런 결정은 존이 종일 일하느라 그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또한 생산성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야근 문화를 조장해서 조직에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없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처럼 노동시간이 점점 증가하는 이유는 오래 일하는 것을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하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일하는 것이 단지 그 사람이 무능해서만은 아니다.


하루 8시간 근무는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다.

하루 8시간 근무는 산업혁명의 부산물로서, 10~14시간 근무가 일반적이었던 시절에 노동조합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8시간은 당시에 노동조합이 고용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파킨슨의 법칙은 일의 양이 언제나 주어진 시간만큼 혹은 그 보다 더 늘어난다고 말한다.
일이 언제 시작하고 끝났는지 정의하는 유일한 인물은 자신뿐이다.
 
특히 솔로 워커는 신성한 8시간마저 무시하기 일쑤다.
분야와 연구 데이터에 따라 다르지만 1,000명의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리랜 서는 직장인보다 적게는 일주일에 2시간부터 많게는 14 시간까지 더 일하고 휴일은 더 적다.
오랫동안 일해야 한 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일주일에 65시간까지 일하기도 한다.
그들의 일과는 아침 8시 이메일 확인으로 시작해 저녁 9시가 되어야 끝난다.
 
정희정은 말한다.
“흔히 집에서 일하면 언제든지 쉬거나 게으름을 피우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대단히 정교한 데이터 분석 기법을 활용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면서 말이죠. 높은 불확실성과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 그들에게 긴 노동시간은 더 높은 수입과 더 큰 생존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불확실성과 경쟁 속에서 솔로 워커들은 일을 마치 전쟁처럼 여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지배해야 한다', '싸움이 치열하다', '가차 없다', '부수적 피해가 발생한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그러나 일터에서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군인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도 아니다.


비록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해롭다.
이런 생각은 과로와 번아웃으로 쉽게 이어진다.
뭔가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사무실에, 차 안에, 부엌에, 스튜디오에, 연구실에 일주일에 50~60시간 머무르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당신은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목표는 중요하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그렇게 일할 수 있는지, 정말로 스스로를 위하는 길인지 생각해 보기를 권 한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클레이턴 M. 크리스텐센 Clayton Christensen 교수의 말을 빌자면,
생이 끝나는 날 돌아보았을 때 여유 없이 일만 했다는 사실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과로는 살인자다.
거기에는 어떠한 고귀함이나 신성함도 없다.

*인용책:솔로워커, 미치지 않고 홀로 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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