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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넷플릭스 드라마로 간 까닭? <오징어게임> <D.P.>

by 산골 피디 2021. 11. 7.


추석 시즌을 전후하여 콘텐츠 업계 최대의 화제는 단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황동혁 감독), <D.P.>(한준희 감독)이다.

세계적 바람을 일으킨 주목 받을 만한 작품인데 두 시리즈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

이 콘텐츠는 드라마인가? 영화인가?
드라마의 진화인가?
아니면 영화의 확장, 변형인가?

 



길이와 회차, 연속극이라는 점에서는 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고, 실제 많은 전문가 그룹, 미디어들이 ‘한드의 성공’ 혹은 ‘K-드라마의 글로벌 히트’로 말하는 걸 보면 드라마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작가’가 없다.
한국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 콘텐츠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 아니 대본을 썼다.

황동혁 감독은 <남한산성>, <도가니>, <수상한 그녀>를 연출했다. 한준희 감독 역시 <차이나타운>, <뺑반>으로 이름을 필모그래피에 올린, 족보로 따지자면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영화인에 훨씬 가깝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포스터 캡처


감독 뿐 아니다.
<오징어게임> 이형덕 촬영감독은 영화 <반도>, <강철비>, <부산행>을 찍었고, 조명을 맡은 박정우 역시 같은 영화들에서 이형덕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채경선 미술감독 또한 영화 <엑시트>,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를 거쳐왔다.

이쯤 되면 황동혁 감독이 불러 모은, ‘영화판’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 스태프들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재미있으면 되지.

  <오징어게임>, <D.P.>는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변모해온 한국 영상산업의 단면을 보여주는 콘텐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왜, 이 시점에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이 콘텐츠는 우리가 몰랐던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인가? 그렇지 않다.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은 한국 영화, 텔레비전(지상파, 케이블, 종편 모두)이 수용할 수 없어서 빛을 보지 못했을 뿐 길면 10년, 적어도 5~6년 전 창작된 스토리, 웹툰을 바탕으로 한다.

다만, 2시간짜리 상업 영화에 담을 수 없고, 편성 심의규정 등 여러 제약조건 때문에 한국 방송 미디어들이 받아줄 수 없던 이야기였을 뿐이다.

(최근 여러 미디어들에 나온 황동혁 감독의 인터뷰를 보라) 그랬던 스토리들이 소재, 장르, 표현 수위, 회차, 길이에 제약이 없을 뿐 아니라 ‘제작비를 듬뿍 쏴주는’ 넷플릭스를 만나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아는 얘기다.

  또 다른 결정적 환경 요인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과 이에 따른 영화산업의 장기 불황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함께 한국 영상 콘텐츠산업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영화가 사실상 멈춘 상태에서 많은 영화인들이 드라마 산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2020년 하반기 여러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이미 드라마산업에 영화계 전문인력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했고, 매우 만족스러운 기획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프로듀서, 감독, 시나리오 작가들이 넷플릭스를 비롯한 국내외 OTT 플랫폼이 형성한 새로운 산업 환경에 주목하고, ‘영화적 드라마’ 기획에 투신하였는데 70분 16부작 미니시리즈는 너무 긴 호흡이라 익숙하지 않지만, 40분 내외 6부작 ~ 8부작이라면 충분히 재미있는 대본을 뽑아낼 만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성훈, 김지운, 이경미, 이준익, 윤종빈, 이병헌, 연상호, 이재규, 허진호...
이미 TV 시리즈를 연출했거나 현재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를 준비중인 영화감독들이다. 이정재, 전지현, 이병헌 등 스크린을 누벼온 배우들 또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일시에 만날 수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라면’ 얼마든지 출연하겠다는 말이 들려온다.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아 한국 영화산업이 불황인 시기에 마침 나타난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가뭄에 단비가 됐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플랫폼의 급성장[기회],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가 부른 영화산업의 불황[위협]이 낳은 새로운 산업 환경에 직면해 영화가 아닌, (전통적 개념의)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라고 부르기 어려운 '제3의 TV 시리즈’가 등장하고 있다.

그 결과 감독, 프로듀서, 작가, 배우, 스태프들이 여의도와 충무로, 텔레비전과 스크린의 오랜 경계와 장벽을 허물고 OTT 플랫폼에서 만나 어울리고 있는 현상...


  <오징어게임>과 <D.P.>는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의 미래 양상을 예감하는 하나의 시그널 아닐까?

 

 

넷플릭스 ‘D.P.’ 화면 캡처



드디어 한국에도 나이키, 버드와이저, 펩시의 광고를 찍고, 마돈나, 스팅,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영화 <소셜 네트워크>, TV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 같은 감독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영화가 쌓아올린 독특하고 걸출한 스토리와 미학,
한국 드라마가 확보한 두터운 글로벌 팬층,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브랜드와 자본,
이 모든 게 결합해 빚어내는 대한민국 영상 콘텐츠산업의 신세계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막 그 입구에 들어서고 있을 뿐이다.


위의 글 전문은 제 페친이자 MBC 아카데미 10기 동기인 김일중 님(한국콘텐츠진흥원 근무) 페북 게시글을 퍼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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