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싱은 큐레이션(curation)이고, 또 다른 크레이션(creation)이다.
지역방송 위기? 생각만 바꿔도 길이 보인다
과거에는 텔레비전 앞에 수십 명의 동네 사람들이 모였지만,
지금은 한 명의 시청자 앞에 수십 대의 텔레비전이 앉아 있다.
온 국민이 손안에 텔레비전을 들고 다니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만 골라 소비한다.
시청자의 선택은 무한대로 열렸고 시청자가 채널에 맞추는 시대는 가고
채널이 시청자에 맞추는 그야말로 시청자 중심주의다.
그래서 채널장사로 배를 불리던 지상파 방송의 시대는 내리막길임을 절감한다.
특히 지역 지상파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오면서 그동안 채널독과점 특혜가 주었던 채널 장사(?!)에서 빠르게 밀려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UHD전환 이슈는 시청자 고화질 서비스 제공을 앞세우며
그 세팅 비용을 고스란히 지역방송사 개별부담으로 떠넘기고 있다.
10여 년 전 HD방송 전환 때도 그랬다.
대형가전 대기업들이 이젠 더 이상 팔리지 않는 HD(고화질) TV 수상기 판매 실적 부진을 UHD(울트라 고화질)TV수상기 판매로 만회할 셈인가 보다.
가뜩이나 종편 출범 이후 해마다 줄어드는 방송광고시장 위축에 끼니를 걱정해야 할 판인데
막대한 UHD방송제작 장비 교체 비용까지 감수해야 하니 이건 무늬만 지상파지,
지역방송사는 가전 재벌의 탐욕 실현에 강제 동원되는 꼴이 됐다. 그동안 참 좋은 세월이었다.
노력으로 얻지 않은 지위는 언제든 흔들리는 법이다.
80년대 방송 호황기에 당연히 누렸던 방송 특수는 이젠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됐다.
그나마 청년실업 걱정 없던 좋은 시절에 정규직으로 안착해 정규적(?!) 봉급을 받으니 그거라도 감동해야 하나?
먹이가 족쇄가 되면 그 먹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실력과 여건이 안 되면 눈이라도 크게 뜨고 귀라도 한껏 열어 내가 몸담은 회사가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지 좌표 정도는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자기최면을 걸어야 그동안 나를 PD로 길러줬던 지역 방송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듯싶어서다.
시청자는 이제 채널보다 콘텐츠를 선택한다.
킬러콘텐츠를 제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당면 과제에도 지역방송사는 안팎으로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어쩌다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한다 하더라도 콘텐츠 유통을 통한 수익창출은 멀기만 하다.
지역 PD들이 직접연출(디렉팅)을 할라치면 총제작 역량을 초집중한다 하더라도 인적 물적 자원 확보가 열악한 지역방송 내부 제작여건 아래에선 킬러콘텐츠 생산까지 감히(?!)넘지 못할 산과 계곡은 높고 깊음을 절감한다.
대다수의 지역PD가 그렇듯 지역 로컬레귤러 제작에 묶여 있으면서 조연출 등 제작보조 인력도 지원 없이 정산, 스팟, 온갖 기타 편성 행정업무도 함께 수행하면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직접 디렉팅해 만들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1년에 1편도 버겁다.
우물 밖 시장의 콘텐츠 트렌드는 촌각을 다투며 빠르게 변화하는데 지역방송의 여건은 역주행이니 콘텐츠 경쟁력도 내리막길이다. 결핍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심기일전의 자세와 배고픈 투혼만 다질 뿐이다. 그러니 콘텐츠 유통은 엄두도 못 내고 어쩌다 힘준 작품에 돌아오는 수상에나 감격스러워하며 제작 열정과 노고를 치하 받는 정도에 자기만족해야 한다.
어쩌다 인정받는 PD 개인의 작품성이 조직 전체의 콘텐츠 제작 경쟁력을 높여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는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역방송국에서 PD 일을 한다는 것이 몸소 디렉팅할 때만 장인정신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인가?
1인 다역도 불사하며 디렉팅의 마법에 빠져들어 편집실에서 불면의 밤을 지새워봤자 결국 시청자는 'PD 혼자서 만든 것치고는 나름 괜찮네. 애썼네'라고 사정 봐가며 위로하는 법이 결코 없다.
PD는 그런 시청자가 원망스럽겠지만 시청자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파 낭비하는 PD가 더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PD에겐 마치 자식과도 같은 프로그램이 함량 미달 미숙아로 태어나는 걸 지켜보며 자기 소모적인 자괴감만 매번 확인할 뿐이다. PD 1인 디렉팅 시스템에서는 매주 어김없이 돌아오는 방송을 가까스로 막는 의무방어전이 점점 버거워진다.
하지만 프로듀싱은 지역이기에 혼자이기에 디렉팅 그 이상을 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오히려 소규모 지역방송일수록 부족한 인력, 장비, 제작노하우를 외부의 우수한 디렉터, 스태프들을 잘 네트워킹한다면 한 해에 여러 편도 프로듀싱으로 제작 가능함을 몸소 체험했다. 프로그램을 보는 눈과 기획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면 프로듀싱에 집중하고 디렉팅은 실력 있는 전문 디렉터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임도 알게 되었다.
프로듀싱은 큐레이션(curation)이고, 또 다른 크레이션(creation)이다.
지역MBC 연합프로듀싱의 첫 시작은 매주 방송되는 위클리 레귤러 <TV특강> 강연프로그램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강연콘텐츠는 우선 요리재료가 단출하기 때문이다.
외부 스태프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강연자와 출연자, MC정도만 잘 선정하면 선택과 집중만으로 퀄리티 유지가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공동제작 참여사가 순번대로 돌아가며 제작하는 기존의 로컬 PD가 직접 디렉팅시스템으로는 콘텐츠 경쟁력에 한계가 왔다. 특강 담당 PD들이 다들 지역 로컬 프로그램을 하나 둘씩 이미 맡고 있는 상황에서 TV특강이라는 공동제작, 순번 제작프로그램만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니 고비용 저효율 관성적 제작방식을 탈피할 수도 답답한 스튜디오를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PD들에겐 모두의 프로그램은 어느 누구의 프로그램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성 파일럿으로 제작방식을 과감하게 바꿔보기로 했다.
TV특강에 고품질 인문학 콘텐츠를 시리즈로 탑재하기로 했다.
강연 전문 기업 마이크임팩트에서 주최 주관한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 빅 퀘스천 2015 생각수업 이라는 콘퍼런스를 방송용 콘텐츠로 다시 뽑아내는 실험작이었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하고 있는 커미셔닝 에디팅(commissioning editing) 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제대로 된 외부기획과 콘텐츠를 받아들여 수요자에게 맞게 재가공, 유통하는 방식을 적용해보고 싶었다.
강연 프로그램 특성상 강연자 섭외가 성패를 가른다.
주당 50만원씩 십시일반으로 갹출한 지역사 공동제작비로는 어림도 없었다.
행사를 총괄한 강연전문기업 마이크임팩트가 방송출연료 전액을 부담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와 해외연사 섭외, 저작권, 강사 라이센스협의 2차 저작물 협의 등 컨퍼런스의 전체적인 부분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MBC와 외주제작사는 현장 인터넷 생중계, 방송장비 지원과 방송 홍보를 하고
고품격 강연콘텐츠의 핵심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지원받은 것이다.
총 2일 동안 현장 강연의 맥을 끊지 않으면서 60분 편성물 12편을 릴레이 강연에서
방송용 강연물로 뽑아낸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이해해주는 마이크임팩트의 코웍마인드가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지역방송사(지역MBC12사), 강연 컨설팅업체(마이크임팩트), 외주사(엠제이프로덕션)가 긴밀하게 협조하고 함께 해야만 가능한 콜라보 프로젝트였고, 윈윈(win-win)이었다.
그 동안의 신뢰관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PD가 갑질의 추억(?!)에 젖어 어깨에 힘을 빼지 않았거나 디렉팅에 매몰되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융합형 천재 다빈치가 다시 살아나도 힘들었을 것이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지역방송 내부 PD에게 연출의 품까지 과감하게 덜어줄 외부 강연컨설팅업체와 외부 디렉터 발굴에 총집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디렉팅의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생각지도 못한 프로듀싱의 새로운 영역이 열리기 시작했다.
혼자 창작하는 버거움을 내려놓고, 판을 짜서 그 판 위에 창의적 아이디어와 콘텐츠들이 함께 뛰어놀게 하는 것!
미술가의 작품들을 큐레이터가 잘 모아서 배치해 전시하듯 이미 있는 콘텐츠를 가치 있게 잘 구성하고 배포하는 일!
난 이런 큐레이션(curation)이 인적 물적 자원이 취약한 지역 방송사 프로듀싱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해아래 새 것이 없듯 “큐레이션(curation)이 크레이션(creation)이다.”
냉장고에 방치된 재료들이 그럴싸한 요리들로 환생하듯 기존의 것들을 잘 섞어 버무리기만 해도
프로그램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탄생하게 되는 걸 경험했다.
꿈은 역시 내가 계획하고 생각한 길로만 이루지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보석 같은 방법과 길들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프로젝트별 제작에 힘을 쏟은 지 만 2년...
방송이 아닌 내 SNS를 보고 유교문화재단에서 프로그램 제작지원 제의가 들어왔다.
지역레귤러 품질을 인정해 먼저 제작 후원하겠다는 믿지 못할 초유의 사건?!이었다.
간신히 중계차 빌려 야외로 나가기에도 빠듯한 제작지원이지만 살인적으로 줄어든 지역 제작비를 비틀어져 쩍쩍 갈라지는 가뭄에 단비였다.
어렵더라도 일단 첫 발만 내딛으면 지도는 다시 그려진다는 교훈을 몸으로 실감했다.
문 밖을 나서야 세상이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알게 되고 아는 것만큼 만든다고 했던가?
지금 이 시간 오늘도 몸은 편집실 안에 갇혀 한 컷 한 컷과 씨름하고 있지만 북극성을 보았기에 이 밤이 좀 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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