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광고와 보험회사 모델을 꿰찬 ‘로지’, 홈쇼핑 쇼호스트로 데뷔한 ‘루시’, 온라인 컨퍼런스 연사로 등장한 ‘김래아’, 유튜버 ‘루이 리’ 등 ….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이 아니라 ‘가상인간’이라는 점이다. 표정, 피부, 미소까지 완벽하게 구현돼 실제 인간과 잘 구별되지 않으며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댓글로 수만명의 팔로워들과 소통까지 한다. 특히 메타버스(가상세계)에 익숙한 MZ세대에게 ‘가상인간’ 산업은 가장 부각되는 분야 중 하나이다. 일명 ‘버추얼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이들은 광고나 게임, 드라마 등에서 모델로 활약해 수익을 벌며 각종 부가가치까지 창출하며 확장성까지 가지고 있다.
엔터테인먼트나 마케팅입장에서도 가상인간 모델은 시·공간 제약이 없어 스케줄 조정이 필요 없고 사생활 문제나 갑질·학폭·미투 논란에서 자유로워 사업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29세 모델 겸 디자인 연구원이 박세리, 송가인 등 연예인을 제치고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주인공은 롯데홈쇼핑이 올해 2월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선보인 가상 인간 '루시(Lucy)'다.
국내 최초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Rozy)는 올해 20억원에 달하는 광고를 찍으면서 유명 연예인을 능가하는 '광고 퀸'에 등극했다.
'메이크 업 유어 콘셉트'(WAKE UP YOU CONCEPT) 브랜드 캠페인과 연계한 광고는 280만 뷰를 기록했다.
GS리테일도 로지와 전속 모델 계약을 체결하고, 25일 인기 상품을 50% 파격 할인하는 '오로지 GS25 데이' 행사를 선보였다.
GS25는 내년에도 매월 25일 로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오로지 데이 행사를 열고 '언제나, 어디서나, 오로지 GS25'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 밖에 LG전자가 올해 1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선보인 23살 여성 음악가 캐릭터 김래아, 디오비스튜디오가 개발한 가상인간 '루이'도 인기다. 루이는 한국관광공사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가을 우체국 앞에서' 영상을 공개해 조회수 280만을 돌파하기도 했다.
LG전자는 11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1'에서 프레스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가상 인플루언스 시장 규모가 지난해 2조4000억원에서 2025년 14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실제 사람 인플루언서(13조)를 웃도는 규모다.
가상 모델로 활용하면 사생활에 대한 우려 없이 위기 관리가 쉽고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도 국경과 시간 제한 없이 전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댓글로 소통하는 등 여느 인플루언서들과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인다는 점도 매력이다.
무엇보다 유통가는 가상인간을 매개로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MZ세대와 공감대를 확대하는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가상세계에 친숙한 MZ세대들은 전공과 직업 등 각자의 세계관을 갖고,
SNS를 통해 소통하는 인간적인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로지는 마케팅 활동은 물론 친환경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MZ세대의 이목을 끌고 있다.
로지는 최근 굿네이버스 '괜찮아요 챌린지' 참여하며 "매년 더워지는 지구를 위해 빨대는 거절해도 괜찮아요"라고 남겼고, 2021년 5월에는 국내 최초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을 찾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기술의 발달로 진짜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도 가상인간과 거리감을 좁히는 요소다.
루시는 기존 가상모델들이 활용하는 인공지능(AI) 딥러닝으로 만드는 딥페이크 방식이 아닌 촬영한 이미지에 가상의 얼굴을 합성하는 3D 애셋 기술을 적용해 피부의 솜털까지 섬세하고 매력적으로 구현했다.
예컨대 루시의 외형을 3D로 만들어놓고, 대역 모델이 특정 장소에서 찍은 사진에 루시의 애셋을 합성하는 방식이다.
이후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을 활용해 현실에 가깝게 보정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롯데홈쇼핑은 내년 중에는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기반으로 사람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가상 모델을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사진, 영상 위주의 가상 모델의 한계에서 벗어나 메타버스 플랫폼 내 라이브 활동 등 실시간 소통이 필요한 분야로 활동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가상환경을 활용한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3차원 가상세계에 현실을 접목하는 메타버스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다"며 "가상인간을 활용해 트렌디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경쟁적으로 MZ세대와 소통하려는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광고 한 편에 수억원을 지불해야 하는 스타보다 ‘가상 인간’을 쓰는 게 ‘가성비’가 높다는 인식이 유통·마케팅계에도 퍼지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미국의 가상인간 ‘릴 미켈라’의 경우 프라다, 구찌, 샤넬의 모델로 활동하는 동시에 자체 제작품까지 판매해 한해 수입이 13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가 기업들이 ‘인플루언서’ 마케팅 비용으로 연간 150억 달러(17조원)를 쓸 것이라고 전망한 점을 보면, ‘가상인간’ 시장은 단순히 코로나 시대의 특수가 아닌 향후 글로벌 마케팅 시장을 주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