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 강연에서 한국사회 자본주의 교육의 방향에 문제를 제기한 <#김누리교수> 와 강릉 날다 학교 지역 청소년이 MBC강원영동 TV특집프로그램 에서 <#코로나와미래생명교육>을 주제로 얘기 나눴던 내용의 핵심을 정리해봤다.
한국은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일 뿐만 아니라,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사회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이러한 '이중의 박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도 엄청난 차별과 격차가 존재하지요. 이러한 현실이 우리가 지극히 기형적인 사회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착취가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대한민국
지금 한국은 끔찍한 '자기 착취' 사회입니다. 이것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옛날에는 주인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면서 노예를 착취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렇게 물리적 폭력으로 착취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착취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최소한 그것이 주된 착취 방식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노예가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착취하도록 만듭니다. 비유하자면,
옛날에는 노예 감독관이 밖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착취했다면, 지금은 노예 감독관을 내 안에 심어놓고 스스로 알아서 착취하게 합니다.
그것이 자기착취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기착취가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피로사회 대한민국입니다.
자기 착취가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자행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것은 정말 소름 끼치는 얘기입니다.
타인이 착취를 하는 경 우에는 착취당하는 자의 내면에 착취하는 자에 대한 저항 의식이 생깁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는 경우에는 내면에 죄의식이 생겨납니다. 이게 끔찍한 것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안되는구나.'
'내가 게을러서 실패하는 거지.'
'내가 공부 안 해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더 노력해야 해'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비난하고 착취합니다.
착취를 당하면서도 착취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 많은 자살과 자해의 지옥이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살 사회'로 굳어진 것은 바로 한국 사회가 '자기 착취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사회적 · 심리학적 구조를 정확히 투시해야 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부단히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기만적인 논리를 내면화하고 신념화해서는
이 사회를 변혁할 수 없습니다.
설마 '내 안에 노예 감독관을 심어놓았으랴' 하고 의심하는 분들은 한번 실험해 보세요.
아주 간단합니다.
어느 햇살 좋은 날,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멋진 음악도 들으면서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감을 느끼려고 시도해 보세요.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 이렇게 속삭일 것입니다.
'너 지금 뭐 하니?'
'너 지금 이런때야?'
'네가 이러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뭐라도 열심히 하고 있을 텐데, 이러고 있어도 되겠어?'
그러면 서서히 내가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닌가,
너무 뒤처지고 있지는 않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그런 경험 모두 갖고 계시지요. 그것이 바로 나의 노예 감독관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착취입니다.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
그러니까 행복감을 느낄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끊임없이 자기를 착취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착취의 결과로 생기는 온갖 불행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합니다. 정말 이상한 사회입니다.
개인을 억압하는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에 생긴 불행의 책임을 개인에게 물으며,
다시 또 개인을 착취하는 이상한 사회가 된 것입니다.
한국은 노인 자살뿐만 아니라 청년 자살 비율 역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지표를 보면 우리의 청년 자살률은 세계 평균의 서너 배입니다.
10대에서 30대 사이 한국 청년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청년 자살률이 왜 높은지는 누구나 추측할 수 있겠지요.
바로 살인적인 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정신적 질환을 일으키고,
이것이 청년 자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3명 중 1명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가 살기 너무 힘든 사회, 너무도 고통이 큰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친구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된 경쟁사회
우리의 삶이 점점 더 지옥으로 변하는 데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먼저 공동체의 해체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다들 어렵게 살았어도 힘든 일이 생기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챙겨주는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공동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관계가 해체된 것이지요..
이는 OECD 사회관계지수 조사에서 최하위라는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우리가 조금 먹고살기 힘들더라도 사회적 관계, '연대의 공동체' 같은 것이 살아 있다면
그 안에서 어려움을 함께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깨어진 지 오래입니다.
이것도 우리 사회가 속수무책으로 헬조선이 되어버린 중요한 요인 중 하나겠지요..
한국 사회가 일종의 세습 자본주의로 굳어져 가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기득권층이 돈과 권력을 독점했지만, 지금은 돈과 권력은 물론 '기회'까지도 다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승자독식 사회가 된 것이지요.. 강도가 점점 더 세지고 있는 학벌 계급화 현상도 심각합니다.
청년들, 그러니까 젊은 세대의 좌절은 대부분 이런 학벌 사회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사회입니다.
시장경제가 몰고 오는 핵심적인 문제, 즉 실업과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개인에게 '자유롭게 내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독일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야수 자본주의(Rautbtierkapitalismus)'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놓아두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가 된다는 의미이지요.
자본주의가 사회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 정치의 책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가 효율적인 체제임은 분명한데,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의 속성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때로는 매우 효율적으로 잡아먹습니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로 인해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무한 경쟁을 치러야 합니다.
여기서는 연대도, 교감도 이미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답안지를 감추며 혼자만 정답을 맞춰야 살아남는 서바이벌 경쟁 ,승자독식의 싸늘한 논리만이 존재합니다.
이건 인간사회가 아닙니다. 정글입니다. 한국은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이 능력있는 인간이 능력없는인간을 잡아먹는 야수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좀 과장하자면 영화 <헝거게임>의 현실판이 그대로 재현된 것입니다.
상대를 꼬꾸러트려야 생존하는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연대의식,약자에 대한 배려,협력정신은 너무 먼 남의 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능력주의,성과주의 잣대로 어렵게 그 좁은 틈을 통과해 살아남은 나의 성공은...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마이클 샌들 교수가 얘기하는 <공정하다는 착각>입니다!
출처: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김누리 교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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